건강 나빠도 통치엔 자신-동남아 장기 집권자들 병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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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통치력에 자신있는 동남아 지도자들은 스스로의 건강이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다.
홍콩의 금융.경제 월간지 신보(信報)가 5월 최신호에서 펴고있는 이색적 주장이다.
첫 사례는 최근 호화 콘도를 정상가격보다 싸게 구입했다가 물의를 빚은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72)전총리.
올해 심장병으로 두차례 수술을 받은 그는 자신의 심장혈관 사진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직접 사진 위에 나타난 심장혈관을 짚어가면서 병세를 설명했다.운동과 음식섭취에 주의하지 않았으면 10년전에 큰 병이 생겼을 것이라며 『평소 건강을 조심하라』는훈계까지 덧붙였다.
지난달 부인을 잃은 인도네시아 수하르토(74)대통령도 94년신장과 요도결석증에 걸렸지만 곧바로 이를 언론에 공개하고 레이저 광선 치료를 받았다.최근에는 거의 완치됐다는 소식이다.
89년 심장수술을 받았던 마하티르(70)말레이시아 총리와 즉위 50주년을 맞은 푸미폰(69)태국 국왕도 지난해 리콴유와 같은 관상동맥 협착증으로 두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이를 즉각 국민에게 알렸다.
이들은 외국 의료진보다 국내 의료진에 의한 치료를 고집해 자기 나라의 의료기술을 선전하는데 신경썼다.
특히 리콴유는 병석에서도 『싱가포르의 심장병치료센터와 의료기술은 세계최고』라고 목청을 높였다.
의사출신인 마하티르는 호주에서 수술을 받거나 외국 전문의를 초빙해야 한다는 측근들의 호소를 단호히 거부했다.퇴원후에는 말레이시아의 의료기술이 세계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웠다.
레이저를 이용한 첨단치료를 받은 수하르토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홍콩의 신보는 이처럼 동남아의 장기집권자들이 자신들의병세를 공개한 것을 「통치력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라고 분석했다. 사망해도 국가가 혼란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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