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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孝를 다시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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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자(孔子)나 맹자(孟子)가 특별히 효(孝)를 큰 목소리로 강조한 것은 그들이 살았던 전국(戰國)시대가 우리 시대에 못잖은 패륜과 불효의 시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부모가 자식의 죄를 들추는 일이 다반사였을 게다.그랬기 때문에 공자는 우리 고장에서는 아비와 자식이서로를 위해 숨긴다고 했던 것일 게다.
부모 보다 재물과 권력을 더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내로라하는 사회 지도층의 일반적 행태였을 것이다.그랬기에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봉양만 하는 것은 효라기보다 가축 사육이나 다름없다고 했던 것일 게다.
아마 사회적 질서와 기강이 사라져 보통사람들은 지켜야 할 삶의 원칙을 갖지 못한 채 유행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것같다.그랬기에 어버이 생존시엔 그 뜻을 살피고 사후엔 그 행적을 살펴 어버이가 해오던 것을 삼년동안 고치지 않는다면 효자라고 일컬을 수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공자가 이렇게 조목조목 꼽아가면서 효도의 원리와 방법을 열심히 가르쳤어도 1백년이 훨씬 넘도록까지 세상에는 별 교육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맹자가 더욱 간단하고 포괄적인 말로 효의 원리를 요약 설명한 것을 보면 그런 생 각을 할 수밖에 없다.자식없음이 큰 불효라거나 평생동안 어버이를 존경하는것 이상의 큰 효자가 없다거나 한 것을 보면 공자보다 맹자의 효가 훨씬 간명하다는 느낌이 든다.
사회 전체를 한가지 원칙이나 이념,또는 힘으로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던 시대에서는 효 같은 가족윤리를 강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나치즘.공산주의.광신적 종교와 민족주의 같은 경우에서 그런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이른바 강 력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등장했을 때는 가족적 결속과 유대를 강화하는 도덕이나 윤리는 오히려 위축되고 파괴당하는 것이 역사의 무슨 법칙이라도 되는 듯싶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많은 사람들을 열광케 만드는 가치나 이념의 힘 속에는 대체로 반(反)인륜적 내지는 문화파괴적 속성이 감춰져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우리 시대에 효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적어도 역사상 다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반(反)가족 문화,반인륜적 가치와 힘들이 우리 시대.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열광하게 만드는 온갖 종류의 가치와 이념의유행은 결국 오늘의 삶의 덕목들 속에서 효가 들어선 자리마저 지워버린 것이다.
「삼천가지 죄목중에 불효가 가장 크다」고 한 율곡(栗谷)선생의 꾸중을 들을 귀조차 사라져버린 시대다.삼천가지 덕목을 나열한다 해도 그 속에 효는 더이상 들어 있지 않은 광신(狂信)과열광의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니 우리들 본연의 사람다운 모습과 부모.자식관계를 되찾자면 잃어버린 효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우리 시대에 합당한 효를 어떻게 해야 되살려낼 수 있겠는지를 따져봐야만 한다.맹자의 말씀대로 모든 효의 근본이 어버이 에 대한 존경과 공경에 귀일(歸一)한다면 모든 어버이들에게는 자식을 불효자식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오늘의 효를 되살려내기 위해선 자식들로부터 존경받는 어버이로살아가기 위해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다는생각도 든다.
옛날의 부모 세대 때 보다 힘들고 불행한 현실이지만 어쨌거나이제는 효도의 일부가 부모 쪽에도 연유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김인회 연세대교수.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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