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유흥가 해체” 칼날에 “무작정 죽이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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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해체를 목표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는 유천동 유흥가. 이 곳의 식당·편의점·미용실 업주들이 경찰의 단속에 반발하며 ‘준법질서 잘 지키는 유천동을 보장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사진=신진호 기자]

14일 오전 11시 대전시 중구 유천동 유흥가 밀집지역. 골목 입구에 ‘준법질서 잘 지키는 유천동을 보장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플래카드는 인근 식당·편의점·미용실 업주들이 내건 것이다.

경찰의 단속으로 손님이 끊기자 견디다 못한 업주들이 하소연을 하고 나섰다. 24시간 식당을 하는 유모(53·여)씨는 “한 달 동안 매출이 100만 원도 안 된다”며 “200여 명의 상인이 고스란히 굶어 죽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경찰 “해체가 최종 목표”=지난 달 18일 대전중부경찰서는 대전의 대표적 유흥가 밀집지역인 유천동에 대한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업주가 종업원을 감금하고 인권유린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이 곳에서 암암리에 불법적인 성매매가 이뤄진다”며 단속배경을 설명했다. 경찰은 해체를 통해 여종업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화재 등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청소년과 시민의 유해환경 제거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며 여론조사·공청회를 여는 등 단속명분을 만들었다.

경찰은 업소에 대한 직접단속과 함께 골목 입구마다에 경찰관과 차량을 배치해 손님의 진입을 막았다. 유흥가 골목으로 들어가는 손님은 검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입자체를 차단했다.

서장이 단속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6개월~1년여 간 경찰관을 상주시켜 업소를 고사시키겠다는 게 경찰의 방침이다.

황운하 대전중부서장은 “내 관할구역 내에 유흥가 밀집지역이 있는 것은 수치”라며 “감금·인권유린이 이뤄지는 곳을 해체하는 것은 경찰의 임무”라고 말했다. 황 서장은 “6개월 정도면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뿌리를 뽑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황 서장의 단속의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황 서장이 ‘내 관할구역에 유흥가가 있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다른 지역에 유흥가가 들어서고 성매매가 이뤄지는 것은 자신하고 관계가 없다는 식의 발상은 오히려 경찰을 깎아 내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 서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천동과 연루된 경찰관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해체하겠다. 업소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영업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 관할구역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황 서장의 발언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계입문이나 자치단체장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경찰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도 나왔다.

◇업주·여종업원 “생계가 달려 있다”=유천동에는 68개의 업소에서 250여 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다. 경찰의 강한 단속 이후 손님이 줄어들자 업소의 항의도 이어졌다.

업주들은 “감금을 했다면 그 동안 적발이 됐을 텐데 지금껏 한 번도 단속된 적이 없다. 업주들이 선불금을 주지 않고 성매매도 하지 않겠다는 각서도 썼다”고 말했다.

신인철 유천동상인연합회장은 “경찰의 단속의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의 단속방식은 업소의 영업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단속도 중요하지만 업주와 여종업원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단속 이후 10여 개의 업소가 문을 닫았지만 모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소의 한 여성(38)은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로 여기서 일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며 “감금·폭력도 없고 성매매도 없는데 무작정 죽이기만 하는 경찰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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