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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만 장관과 ‘텃세’ 관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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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건국 60주년 기념식에서 교육에 대해서는 딱 한마디 했다. “가난 때문에 공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 빈곤층 자녀에게는 대학등록금을 대폭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 말이 와닿지는 않는다. 돈 없어 대학에 못 가기보다는 사교육을 못 받아 대학에 떨어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무릎을 탁 치게 하려면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 공약의 세부 실행계획을 내놨어야 했다.

건국 60년,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3위(국민 총소득 기준) 경제대국으로 크는 데는 교육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부모들은 “배워야 산다”며 밥은 굶어도 자식은 공부시키는 열정적인 교육열을 보였다. 그 결과 고졸자의 84%가 대학생이 되는 1등 교육국가가 됐다. 물론 정부 역할도 컸다. 1948년 3900여 개였던 초·중·고는 현재 1만900여 개, 34개였던 일반 대학은 200개로 늘어났다. 콩나물 교실을 추방했고, 첨단 디지털 교실에서 에어컨을 틀어줄 정도가 됐다.

그러나 교육정책은 후진국형이다. 4년마다 대입제도가 바뀌어 ‘입시 올림픽’을 치른다. 대학의 국제경쟁력도 형편없다. 겉모습은 최고인데, 안은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 지경인 데는 교육부 장관과 공무원의 책임이 크다.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16층 교육과학기술부 대회의실에는 역대 교육부 장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상처투성이인 한국 교육의 상징이다. 얼마 전 모교·자녀 학교 특별교부금 지원 파문으로 낙마한 51번째 김도연 장관의 사진도 곧 붙을 것이다. 교육부 장관은 60년간 52명이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년 남짓이다. 정책 혼선, 입시부정, 개인 문제…. 교체 연유도 갖가지다. 장관 이·취임식은 대부분 이 회의실에서 열린다. 취임식 때 조기 낙마한 전임자 사진을 보는 심정은 어떨까. 김도연 장관은 “키(1m88cm)가 큰 만큼 교육을 멀리 내다보겠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을 잡아먹은 턱밑의 관료는 보지 못했다.

6일 취임한 52번째 안병만 장관도 앞날을 장담하기 힘들다. 교원평가제와 국제중 설립, 사교육비 대책, 공교육 경쟁력 강화 등 과제가 숱하다. 서울시 첫 직선 교육감이 된 공정택씨는 2010년 6월까지 임기가 1년10개월 보장돼 있다. 안 장관이 더 불안한 자리에 앉은 셈이다. 그러니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다.

우선 ‘텃세’ 부리는 공무원부터 쇄신해야 한다. ‘나는 박힌 돌이고 장관은 굴러온 돌’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다. 정권 탓만 할 뿐 정책 혼선을 책임진 관료도 거의 없었다. 교부금 지원을 기획하고 집행한 관료만 봐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 때 대학자율화를 억누르고, 로스쿨 지역 나눠주기 총대를 메고, 3불 정책과 수능등급제 ‘완장’을 찼던 이들이 여전히 잘나간다. 오리발 내밀기 선수들이다. 안 장관이 거스 히딩크 감독처럼 지연·학연 줄대기 병폐를 끊고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등용하는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또 한 가지는 소통이다. 교육과 과학을 잘 모르는 안 장관은 관료들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과학 분야는 특히 문제다.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나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그렇다. 교육이든 과학이든 각계 의견을 듣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언론과도 자주 만나야 한다. 김신일 전 장관은 관료들이 “실수할 수 있다”며 기자들과의 접촉을 막아 자신의 신념을 설명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다.

60년 한국 성장의 동력인 교육을 이젠 선진화해야 한다.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개혁이 그 첫 걸음이다. 안 장관은 뭘 남기려는가. 교육 선진화와 텃세 관료 쇄신이 핵심이었으면 좋겠다. 히딩크처럼 선수를 잘 써야 빛이 나는 법이다.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