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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토익 고득점'에 골탕 먹어온 기업들의 반격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9월부터 LG전자·포스코건설 등 기업들의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난달 잡코리아가 상반기 입사시험 면접 경험자 10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중 94.5%가 취업을 위해 영어면접 준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 3명 중 1명은 이미 상반기 구직 과정에서 영어면접에 '혼쭐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토익 스피킹, 오픽(OPIc), 지텔프 스피킹 등 각종 영어 말하기 시험 성적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올해 부쩍 늘었다. 올 상반기부터 이런 말하기 시험을 대졸 사원 공채에 활용하기 시작한 삼성전자의 경우 앞으로 2~3년 내에 영어 능력과 관련해서는 말하기 시험 성적만 인정할 예정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토익·토플·텝스 등 필기시험 고득점자들의 '숨겨진' 영어 실력에 골탕을 먹어온 기업들이 이제 신입사원 선발에서부터 '진짜' 영어 실력을 가려보겠다는 의도다. 다음은 중앙SUNDAY 전문.


기업들이 입사 지원생들의 ‘진짜 영어 실력’을 가려내기 위해 토익 스피킹이나 오픽 등 영어 말하기 시험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헤드셋을 끼고 질문에 답하면 녹음된 응시자의 답변은 미국에 있는 공인 평가자들에게 보내져 채점된다. 최정동 기자

“존경하는 인물과 입사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영어로 말해 보세요.”
4월 말 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공채에 응시했던 윤승민(27·K대 법학과 4년)씨는 면접위원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서류 전형은 토익 910, 텝스 800점대 초반의 영어 성적표로 너끈히 통과한 윤씨였지만 예상 못한 질문을 던지며 영어로 답해 보라는 요구에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돌아선 것이다. 지금까지의 영어 공부 방식에 회의를 느낀 그는 6월부터 전화영어 서비스를 신청해 하반기 공채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신규 인력 채용에 토익·토플 등의 공인시험 성적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신입직원 영어 말하기 능력에 대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9점에 불과했다. 이렇게 ‘무늬만 토익 고득점’인 신입사원들의 영어 실력에 골탕 먹어온 기업들이 ‘진짜 영어 실력’ 가리기에 적극 나섰다.
리크루팅 업체인 잡코리아가 올 상반기 입사 면접을 본 구직자 10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영어면접을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36.7%에 달했다. 지난해보다 8.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취업을 위해 영어면접 준비가 필요하다”는 응답자는 94.5%나 됐다. 실제로 9월에 신규 인력 채용에 나서는 LG전자의 경우 면접 때 영어 원어민 강사도 참여시킬 계획이다. 응시자와 5~10분 정도 대화를 한 뒤 평가한 점수는 전체 면접 점수의 20%를 차지하게 된다. 역시 9월에 대졸 신입사원을 뽑는 포스코건설도 1박2일의 합숙 과정에서 원어민 영어 강사와 10~15분간 일대일 대화를 하도록 해서 응시자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한다.

또 기존에도 지텔프 스피킹·SEPT·ESPT 등의 영어 말하기 시험이 일부 기업에서 직원 평가용으로 이용돼 왔지만 토익의 명성을 등에 업은 토익 스피킹과 삼성 계열사인 크레듀에서 주관하는 오픽 등의 영어 말하기 시험이 최근 1~2년 새 도입되면서 이를 영어 면접 대체용이나 보완용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아무래도 면접시험을 실시하는 것보다 객관적인 평가 인력 확보가 쉽고 비용 면에서도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GS건설이 지난해부터 신입사원 선발에 토익 스피킹 성적을 활용해 온 데 이어 올해는 삼성·두산·LG·CJ 그룹 계열사와 GS칼텍스·신한은행·우리은행·미래에셋·아모레퍼시픽·포스코건설 등이 토익 스피킹이나 오픽 성적을 신규 채용에 공식적으로 참고하기 시작했다. 기준 이상의 성적을 제출하면 영어면접을 제외해 주거나, 가산점을 준다든지, 서류 전형 통과자에 한해 단체로 영어 말하기 시험을 보게 하는 등 활용 방식은 다양하다.

삼성그룹의 경우 말하기 시험 성적이 없어도 올해는 응시할 수 있도록 했지만 대신 면접 전형 때 오픽을 별도로 치르게 했다. 삼성 측은 2~3년 내에 입사 응시 자격에 영어 능력은 말하기 시험 성적만 인정할 계획이다. 올해 입사 전형에서 삼성 측이 제시한 영어 말하기 능력 기준은 토익 스피킹의 경우 레벨 5, 오픽은 IL(Intermediate Low) 등급 이상이었다. 이공계는 각각 레벨 4와 NH(Novice High) 등급으로 인문계 전공자보다 한 단계씩 낮았다.

최세열 한국토익위원회 말하기·쓰기 팀장은 “레벨 5면 안내문이나 소개문·광고문을 명확히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며 “사회·직장 생활과 관련해 기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면 받을 수 있는 등급”이라고 설명했다. 오픽의 IL 등급 역시 문법이나 발음 등은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자신이 친숙한 주제에 대해 짧은 문장으로 대답할 수는 있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취업 준비생들의 영어 공부 방식도 바뀌고 있다. 잡코리아의 조사에서 절반 정도(53.5%)의 구직자가 기존 토익·토플 시험 준비는 영어 면접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효과적인 학습 방법으로 해외연수에 이어 스터디 그룹 및 실전 연습을 들었다. 1년 전부터 스터디 모임을 해온 S대 영문과 재학생 박진석(27)씨도 얼마 전부터 토익 문제집을 풀고 영어 잡지를 읽고 해석하는 방식에서 영어 면접 준비로 방향을 바꿨다.

인터넷의 ‘취업 뽀개기’나 ‘미여지(미래를 여는 지혜)’와 같은 취업 준비 카페에서는 영어 면접 스터디를 함께할 회원들을 찾는 글이 요즘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한희원(25·여)씨는 “학교 게시판이나 도서관 알림판에도 이런 스터디 구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방학 동안 S카드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이지윤(25·여·E여대 경영학과)씨의 경우 주말에도 영어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하느라 쉴 틈이 없다. 이씨는 “두 달 동안 인턴 근무를 하면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진땀을 뺐다”며 “요즘엔 입사 시험 때도 영어면접을 하거나 말하기 시험 성적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 친구 세 명과 함께 스터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2주에 한 번 2시간씩 영국 원어민인 친구를 불러 교재에 나오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방식이다. 이씨는 “1시간에 4만원의 강사료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기존의 필기 영어 시험 성적을 포기할 수도 없기 때문에 취업 준비생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지윤씨도 학원에서 토익 강좌 수강을 병행하고 있다. 종로 YBM 성시민 강사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YBM의 매출이 20%가량 증가했다”며 “예전에는 학생들이 독해와 문법·듣기 위주의 준비만 했는데 요즘엔 말하기와 쓰기 강의까지 더 듣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어평가 전문가인 신동일 중앙대 영문과 교수는 “진짜 영어 실력을 알려면 영어 면접을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만 비용과 평가자 및 점수 관리 문제가 만만치 않다”며 “잘 만들어진 영어 말하기 시험을 이용하는 것도 고득점 ‘기술’이 아닌 객관적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데 기존의 필기 시험들보다는 훨씬 유용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러나 “기존의 토플·토익도 사실 충분히 좋은 평가틀인데도 불구하고 기업이나 학교가 행정편의적 관점에서 획일적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각종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라며 “영어 말하기 시험도 응시자들에게 고득점 습득 기술만 요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각각의 목적이나 기능에 맞게 보다 다양한 시험들을 개발해 이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수 기자 ·염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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