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내 노래 듣기 싫다면 기꺼이 그만둘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조용필씨가 16일 뉴욕의 유명 공연장인 라디오시티에서 데뷔 4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기에 앞서 14일 맨해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가왕(歌王)’ 조용필. 그가 14일 (현지시간) 미국 뉴욕 땅을 밟았다. 데뷔 40주년 기념 콘서트를 위해서다. 16일 라디오시티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의 타이틀은 ‘The history 킬리만자로의 표범’. 제목으로 삼을 만큼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에게 각별했나 보다. 회견 도중 몇 번이나 이 노래를 거론했다. “인간의 삶을 이 킬로만자로의 표범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선가. 얼룩덜룩한 호피 무늬 티셔츠에 검은색 선글라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영락없는 한 마리의 표범이었다.

노래 인생 40년이라지만 세월은 그의 얼굴을 비켜갔다. 올해 59세라는데 여전히 동안(童顔)이다. 그러나 삶과 대중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땐 묵직한 연륜이 느껴졌다. 가수 역정의 끝자락을 말할 때 특히 그랬다. 그는 “대중이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기미가 보이면 기꺼이 그만두겠다”고 잘라 말했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는 노랫말 그대로였다.

30여 명의 취재진 중 3분의 1이 일본기자들이었다. 대한해협 너머에서도 여전한 그의 인기가 실감났다. 그는 이들의 질문엔 일본말로 답변했다.

-공연하는 소감은.

“감동과 긴장감이 동시에 든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 줄 것이고 기대된다.”  

-타이틀을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한 까닭은.

“내가 가장 좋아해서가 아니라 의미 있는 곡이라는 생각에서다. 모든 사람이 이 노래를 들으면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노래엔 성공과 꿈을 위해 가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노래방에서 남자들이 특히 목청껏 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내가 불렀지만 그걸 소화해 내는 건 관객이다.”

-한국 대중음악이 발전하려면.

“노래 위주의 그룹이 많이 나와야 한다. 댄스 그룹은 춤을 추느라 립싱크를 할 수밖에 없어 노래가 늘지 않는다. 그러나 그룹은 며칠 밤을 새우면서 연습한다. 그러면서 좋은 싱어와 연주가가 나온다. 또 가수들은 대중을 책임져야 한다. 대중이 젊었을 때 오빠 하면서 따라다니다가, 50세가 돼도 그 가수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멜로디가 가장 중요하다. (팬들이) 멜로디를 평생 가져갈 수 있게 끌어 줘야 한다.”

-한류의 해외 진출을 어떻게 보나.

“한류는 대중문화에 한 획을 그었다. 엄청난 기획이 있었고 연구도 했을 것이다. 한류가 한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나 절대 운이 아니다. 그럼에도 과거 홍콩 영화가 유행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위험을 막으려면 바탕이 필요하다. 외국 문화를 이해하고 그것과 섞여야 한다.”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언어가 확실히 돼야 하고 문화도 확실히 알아야 한다. 한국식으로 독특하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음악이 엄청나게 훌륭하면 모르지만 무작정 공연을 통해 들어가자는 것은 안 된다. 한국의 히트곡이 미국으로 넘어온 뒤 데뷔하는 형식이 돼야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오는 건 위험하다.”

-50주년, 60주년 콘서트도 기대할 수 있나.

“40주년을 생각하고 노래를 불러온 게 아니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목소리는 변할 수 있지만 노래 목소리는 잘 안 변한다. 멜로디도 있고, 뒤에서 다른 악기들이 받쳐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70세가 된 어떤 가수가 노래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안쓰러웠다. 관객은 기립박수를 쳤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노래를 부른다면,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 기미가 보이면 대중을 위해 그만두는 게 좋다. 듣기 싫은 노래를 계속 들으면 정말 짜증난다. 옛날 목소리를 기대했다가 잘 올라가지도 않고 힘도 없으면 얼마나 실망하겠느냐. 어떤 의미에선 배신이다. 어느 정도면 안 되겠다는 걸 나는 안다. 그때가 되면 기꺼이 그만두겠다.”

-은퇴 후엔.

“평생 음악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대충 할 일이 계획돼 있다. 음반 기획과 감독을 해왔고 무대 및 뮤지컬 연출 등도 하고 싶다. 아마 그런 쪽 일을 할 것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