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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나홀로 어린이'80萬-맞벌이.결손가정 급증따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부모가 맞벌이하는 서울구로구 K초등학교 4학년 金모(11)군은 자신이 사는 연립주택 출입문 열쇠를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는「열쇠 어린이」다.그렇지만 그는 방과후 텅 빈 집에 열쇠로 열고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싫다.3일에도 金군은 오후1시40분수업이 끝나자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동네 만화가게로 향했다.1시간여 동안 낯뜨거운 만화 3권을 보았지만 이내 싫증이 나옆의 오락실로 자리를 옮겼다.여기에서는 한창 인기있다는 폭력물「스트리트 파이터」에 빠져 해 가 지도록 놀았다.
3월까지는 속셈학원등을 다녔지만 자주 결석하는 것을 안 어머니가 아예 끊어버리는 바람에 요즘은 주로 여기가 단골이다.돈을다 쓴후 집으로 돌아간 金군은 배달된 일일학습지가 방에 어지럽게 쌓여있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가방을 던져 놓고 냉장고를한번 열어본뒤 그대로 나간 金군은 놀이터 옆 골목에서 만난 초등학교 2학년생의 돈을 빼앗다가 지나던 어른에게 잡혀 파출소로넘겨졌다.상업을 하는 金군의 어머니는 『장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애를 맡길 곳도 없어 큰 일』 이라고 한숨지었다.
맞벌이 부부와 결손가정,「핵(核)가족」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나 방과후에 어린이를 맡아줄 시설이 없어 안전사고와 나쁜 환경에 방치되고 있다.현재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방과후 보육사업대상 아동수는 전체 초등학생 3백90만명의 20 %정도인 70만~80만명.그러나 방과후 어린이를 돌봐주는 곳은 사회복지관 70개소등(보호아동 2천여명)뿐이다.91년 영유아보육법 시행 이후 어린이집.놀이방등 영.유아 보육시설은 2천여개(90년말)에서 올해말 1만2천개로 늘었으나 사 회의 인식부족으로 방과후초등학생을 보호해줄 시설은 예전 그대로다.
정부는 지난 1월부터 어린이집등 보육시설의 입소연령을 12세까지로 늘렸으나 보육시설에선 공간문제와 낮은 보육료등 때문에 초등학생을 받지 못해 비현실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4세 미만의 형법범죄는 강력범죄 63건을 비롯,1천8백76건에 달했으며 적발된 어린이 대부분은 어른들이 돌보지 못하는 경우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비영리단체.학교.교회.스포츠센터.보육시설등에서 방과후 보육프로그램(After School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미국에선 어린이를 자동차.집에 혼자 두거나 거리에 나다니게 하는 것도 규제한다.스웨덴.영국등 유럽에서는 당국에 등록한후 자기집에서 동네 아이들을 돌보는 전문 가정보육시설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일본에서도 학교와 보육시설등에서 방과후 생활.학습지도를 하고 있다.
서울대 최일섭(崔日燮.사회복지학과)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학교.교회등 기존시설의 오후 개방▶기존 영유아보육시설에 대한 정부의 증축지원▶방과후 보육비용의 소득세 공제▶전문보육인력의 양성▶적절한 교육프로그램 개발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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