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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 <21> 함광복의 철원평야 DMZ

중앙일보

입력

추가령구조곡에서 주춤거리던 비구름이 북상했다. 비가 멎자 쨍 하고 해가 났다. 흠뻑 빗물에 씻긴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DMZ), 그리고 평강고원이 알몸을 드러냈다. 비 온 뒤, 그곳의 8월은 연두 초록, 초록 연두 고추냉이 색깔이다. 철원 DMZ 평화전망대 앞에는 그렇게 끝없는 녹색 바다가 펼쳐졌다.

보름여 전 타계한 이청준이 생전에 여길 와봤다면 이 녹색 바다에 묻힌 이어도 전설에 탄성을 질렀을지 모른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는 소설‘이어도’처럼 녹색 바다에도 긴긴 세월 섬이 거기 있어 왔다. 그 옛날 궁예왕이 궁예도성을 세우고, 그 천년 고도 위에 일제가 대륙 교두보용 계획도시를 세웠으며, 북한이 그 근대화 도시를 잠깐 강원도청 소재지로 삼았던 ‘옛 철원’이 거기 있어 왔다. 소설은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녹색 바다의 섬도 누가 본 사람은 없다. 그 섬도 이어도처럼 전설의 섬이다.

궁예왕은 본디 중이었다. 그는 가사를 벗고 용포로 갈아입기 위해 한반도 중부를 ‘ㄷ’자로 장정했다. 893년 10월에 원주를 떠난 그는 이듬해 10월에 강릉, 그 다음해 8월 철원 벌판에 등장해 마침내 왕이 됐다. 그리고 30만 년 전 오리산(鴨山)이 토해놓은 용암대지를 딛고 옛 고구려 땅 회복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출발시켰다.

‘궁왕(弓王) 대궐 터에 오쟉(烏鵲)이 지지괴니 쳔고흥망(千古興亡)을 아는다 몰으는다’.

기실 철원은 출발의 땅이다. 강원도 관찰사 송강(松江)도 관동 지름길을 철원에서 찾았다. ‘관동별곡’은 그가 궁예도성을 지나갔다고 적고 있다. 그가 동주(철원)를 출발해 걸어간 김화·회·안변·양양·강릉·삼척·울진·원주는 궁예왕이 걸어왔던 그 길의 역순이었다. 그 길을 또 한 무리가 걸어갔다. 임진년 봄 한성을 수중에 넣은 왜군 4번대 주장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는 보급선 상륙지를 찾아 동해안 울진으로 동진했다. 이 악랄한 귀신마저 궁예가 걸어온 그 길, 송강이 걸어간 관동 지름길이 철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송강의 그 길을 고을 하나 벗어나지 않고 따라갔다.

죽은 왜장이 현몽이라도 한 것일까. 일제의 침략 속물들은 모든 길이 철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은 러일 전쟁을 빌미로 추가령구조곡 좁은 골짜기에 경원선을 놓았다. 원산 찍고, 청진 찍고, 시베리아와 유라시아로 간다는 야망의 머릿돌을 철원역에 세웠다.

‘에헤 금강산 일만이천 봉마다 기암이요’.

평양 명기 선우일선이 부른 조선팔경가. 그 금강산전철 CM송이 금강산으로, 금강산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목수 일당이 1원90전일 때, 그 열차 편도 운임은 7원56전이나 했다. 사치와 환락의 관광전철마저 철원역에서 출발했다.

1945년 8월. 철원 벌판에 세워졌던 제국주의 야심작은 침몰했다. 그러나 그해 8월은 38선 이북에서 사회주의호가 출항하던 달이다. 북한은 일제가 놓고 간 ‘옛 철원’을 고스란히 인양했다. 이밥에, 수돗물에, 전깃불에…. 참으로 요긴한 도시였을 것이다.

그 야망의 도시를 찾아 ‘옛 철원’으로 가는 중이다. 민통선 검문소 앳된 병사가 바리케이드를 치워줬다. 철원역 신호기는 녹슨 척 색칠만 한 이미테이션이다. 철로와 플랫폼도 가짜다. 4차로 명동거리에 일제가 공들인 근대화가 겨우 남아 있었다. 무너지고 주저앉은 금융조합,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제사공장…. 한 세기 전 일본이 유령처럼 검버섯 이끼를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었다.

폭격에 만신창이가 됐을망정 철원 노동당사는 당당했다. 직선을 강조한 수직 창문 옆에 높고 넓은 테라스가 철원 벌판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러나 독야청청한 저 모습은 새겨보아야 한다. 미군 탱크는 노동당사 계단을 밀고 올라가기만 하고 말았다. 그 캐터필러 자국이 이건 전리품이기 때문에 봐줬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역사는 가끔 작의적일 때가 있다. 남방한계선 철책선 방벽. 그게 궁예도성 남벽이란다. 도성은 방벽 넘어 DMZ 속에 묻혀 있었다. 삼십 리 성곽이니까 DMZ 이쪽 끝에서부터 저쪽 끝이 다 도성일 것이다. 고려사는 포악한 궁예왕이 백성의 돌에 맞아 죽었다며 그를 깎아내렸다. 그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우리는 왕성을 DMZ 속에 가둬놓았다. 일제마저 왕을 작심하고 깔아뭉갰다. 도성 안내판은 경원선이 궁궐 터를 밟고 지나갔다고 가리키고 있다. 멀리 작은 연못, 슬픈 왕의 그 눈물 못엔 외로운 고라니 한 마리가 발을 씻고 있었다.

‘옛 철원’은 지금 자국으로만 남아 있었다. 전쟁이 꽉꽉 밟고 간 자리 깨진 기왓장처럼 몇 토막 얘깃거리로 남아 있었다. 가을걷이 끝난 들판에 내팽개쳐진 허수아비처럼 추억이 되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어도가 전설에서 실존으로 변신한 것은 파랑도, 소코트라 암초 그 자국 때문이지 않았는가. 저 자국들이 ‘옛 철원’의 실존 단서다. 파랑도이거나 소코트라 암초인 것이다. 그건 머잖아 ‘옛 철원’이 되살아난다는 강력한 암시다. 사실 궁예도성 발굴복원 문제는 꽤 많이 진척됐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철원은 출발의 땅이란 사실이다. 

함광복


■ 함광복은=1949년 강원도 홍천 출생. 강원대학 졸업. 전 강원도민일보 사회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실장. 현 GTB강원민방 방송위원, 한국DMZ연구소장, 최승희기념사업회 부집행위원장. 제18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 부문)과 제27회 한국기자상(특별상 부문) 수상. 저서로 『DMZ는 국경이 아니다』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 『흐르지 않는 강』 등.


Tip

■의정부에서 43번 국도를 타고 포천을 거쳐 신철원까지 달린다. 서울에서 1시간30분. 한탄강 중류 고석정 관광지 내에 위치한 한탄강관광사업소(033-450-5558)는 철원 관광의 거점. 제2땅굴과 철원평화전망대를 둘러보려면 이곳에서 출입 신청을 해야 한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중·고생 1500원, 초등생 1000원으로 하절기 출입시간은 오전 9시30분·10시30분, 오후 1시·2시30분 등 네 차례. 본인의 승용차를 이용해 단체로 관광하면 대표자 1명은 신분증을 소지해야 한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

■궁예도성의 흔적은 철원평화전망대 왼쪽 군사분계선 너머 초록 숲에 묻혀 있다. 철원평화전망대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운행하는 모노레일은 어른·청소년 3000원, 초등학생 2000원. 정원 80명으로 285m 오르막을 3분 만에 올라간다. 안보도로로 불리는 464번 지방도를 따라 경원선 최북단역인 월정리역과 녹슨 기관차, 철새도래지인 샘통, 구 철원역사, 제2땅굴 등이 줄지어 나타난다. 제2금융조합,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노동당사, 철원제일감리교회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정연리 민통선 안에는 메기매운탕으로 유명한 전선휴게소(033-458-6068)가 있다.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과 백골전선교회 사이에 위치한 전선휴게소에 가기 위해서는 양지리 검문소에서 ‘전선휴게소에 간다’고 목적을 밝히고 신분증을 맡기면 통과시켜 준다(철원군 관광문화과 033-450-5365). 


공동 캠페인 : 중앙일보·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Korea spark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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