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고개숙인경제>上.급강하냐 연착륙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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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마(魔)의 5.5%」.공교롭게도 3월중 제조업 생산 증가율과 4월중 수출 증가율이 갑자기 뚝 떨어지면서 똑같은 숫자(5.5%)를 기록하자 경제 부처가 바빠졌다.2일 아침 신한국당과통상산업부의 당정 협의에서도 급락한 수출 증가율 이 화제로 떠올랐다. 급강하의 신호탄인가,아니면 연착륙으로 가는 과정에서의일시적 현상인가.
재정경제원이나 통상산업부 어디에서도 자신있게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없다.한달 통계 갖고 속단하긴 이르다는 원론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내심 무척 찜찜해 하고 있다.우리 경제의 양대 축인 수출과 중화학공업,두 축이 한꺼번에 급격하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내수와 수출이 모두 부진해 재고가 쌓이고 있다(4월중 재고 증가율 39.9%).지난해 70%가 넘는 생산 증가율을 기록했던 반도체도 4월중 재고 증가율이 90%대에 육박했다.국제 시세 또한 지난해의 반값으로 떨어져 수출 증가율을떨어뜨리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내수가 주춤하는 판에 수출까지이렇게 어려워지니 재고가 쌓이고,산업현장에서의 활동이 둔화되는악순환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에 수입 신장세는 여전하다.값비싼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이 부쩍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우리 힘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세계 수출시장의 여건부터 썩 밝지 않다.
수출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8월부터 가시화된 엔화 가치 하락(엔저 현상)인데 이 역시 손댈 수 있는게 아니다.환율 변동이 수출입에 영향을 미치는 데 6~9개월이 걸리는 점을감안할 때 「엔저의 악영향」은 갈수록 더욱 뚜렷 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다고 개방.국제화 시대에 과소비 억제나 건전 소비 캠페인을 벌일 수도 없다.기업의 투자 심리가 말로만 되살아나는 것도아니다.걱정은 되지만 당장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란게 정부의 고민이다.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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