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對北 2단계 제재완화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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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이 준비해 놓은 것으로 알려진 25개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는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완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제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기업의 직접투자금지▶수출신용제공금지▶미국내 북한자산 동결등의 조치는 그대로 살아있기때문이다.
따라서 25개항의 2단계 완화조치는 미국이 북한을 연착륙시키는데 필요한 기반조성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물론 이 조치들의 시행시기는 향후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
우선 4일부터 뉴욕에서 열리는 유해송환협상이 계기가 될 것이다.북한이 가시적 성의를 보여야 한다.유해발굴비용 보상문제와 공동발굴조사단 파견문제가 타결될 경우 2단계 완화조치가 앞당겨질 수도 있을 전망이다.
또 내달중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사일협상과 북한이 마음만먹으면 당장이라도 개설 가능한 연락사무소 문제도 2단계 조치의시행시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4자회담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면 제재완화에 더할나위 없는 좋은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다루기 위한 4자회담과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는 서로 연계시킬 사안이 아니라는 게 미국의 공식입장이다.하지만 한.미 양국이 4자회담에 두고 있는 무게를 고려할 때 4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호의적 자세는 북.미관 계 전반에 매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게 확실하다.북한이 4자회담을 전면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실은 이런 요소를 감안한 것이다.북한도 미국의 이같은 의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한국정부도 북한이 4자회담에 호의적인 자세를 보일경우 2단계조치에 포함돼 있는 정도는 풀어줘도 좋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각종 법규를 통해 북한의 발목을 꽁꽁 묶어 놓고 있다. <별표 참조> 한국전 발발 직후인 1950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수출관리법과 적성국교역법을 비롯해 대외원조법.국제무기거래규제법등은 대북 교역.투자.금융거래.원조에서 여행.통행.운송에이르는 갖가지 사항을 규제하고 있다.
공산국가,미사일수출통제체제(MTCR)위반국,자유이민조항 미준수국가로서 받는 규제에다 KAL기 폭파사건에 따른 테러지원국 지정(88년1월)은 이중삼중으로 북한의 목을 죄는 장치가 되고있다.「몇가지 정한 것 빼고는 모두 안된다」는 식의 강력한 포지티브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자신의 경제난이 마치 미국의 제재 때문이기라도 한것처럼 최근들어서는 기회 닿을 때마다 「완전철폐」를 요구해 왔다.
표에서 보듯 미국의 대북 제재조치는 행정부 결정으로 풀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클린턴행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여지가 크다.
미국의 대북제재 내용을 항목별로 세분하면 1백가지가 넘는다.
미국은 이를 몇단계로 구분,북한의 태도변화와 연계시켜 북한을 연착륙시키는 지렛대로 활용할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1단계 완화조치(95년1월)에 이어 조만간 2단계조치가 시행되더라도 핵심적이고 강력한 제재수단들은 여전히 미국의 수중에 남아 있게 된다.
앞으로 이들 수단을 북한의 태도변화 유도에 얼마나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느냐는 문제는 미국의 정치적 판단과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는 셈이다.
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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