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칼럼>해외원정 성공률 5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그동안 우리는 숱한 산악인의 희생을보아왔다.
69년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10명의 목숨을 눈사태속에 묻었으며 76년 에베레스트 원정훈련중 설악골에서 눈사태로 3명이희생됐다.
71,74,83년 세차례에 걸쳐 모두 17명의 목숨을 앗아간인수봉의 대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우리를 슬프게 하는 국내 산악계의 대형 참사다.
뿐만 아니라 해외원정 원년인 62년부터 94년까지 33년간 29개팀 1천6백10명이 2백24개의 고봉에 도전해 1백27개봉을 등정,57%의 성공률을 보였다.
그러나 해외원정에서만 33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양정고보 산악부의 리더(5학년)였던 노정환(盧程煥)씨가 한국암벽등반 사고의 첫머리를 기록했다.
37년 발족된 양정고보 산악부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그는 바위길 오름에 심취한 젊은 산악인이었다.
날렵한 몸매에 유연성을 지닌 그는 암벽등반에서 달인의 경지를보였다.양정교지에 남겨진 활동기록을 살펴보면 盧씨는 평소에도 로프를 사용하지 않는 단독등반을 즐겼다.
도봉산 만장봉 연통모양의 침니(바위틈)를 2분,북한산 인수봉을 9분45초에 오르는 날렵한 몸놀림의 소유자였다.
57년전인 39년 4월6일.
그날은 날씨조차 그의 죽음을 예견한 듯 산마루에는 모래안개가뿌옇게 덮여 있었다.
서쪽 하늘은 봄을 시샘하듯 시커먼 구름이 드리워졌다.
전일.이재영.이종민.임종대.정태혁씨 등과 동행한 그는 주봉 남쪽의 34침니를 단독등반으로 오르다 마지막 구간인 좁은 침니에서 추락,바닥으로 떨어졌다.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은 채 그는 6일후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이 오늘에 와서 더욱 돋보이는 것은 반세기를 지내온한국 산악운동의 선행자로서 조난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을 딛고 후배 산악인들은 82년 히말라야의 닐기리 중앙봉(6천9백45)을 등정했으며 84년엔 겨울 에베레스트(8천8백48)에 도전해 8천까지 진입했다.
등산운동의 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되는 조난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닌 등산인 모두의 아픔이다.
지난달6일 양정산악회에서는 노정환씨를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 산악계의 첫 희생자를 추모하고 그 아픔을 되새기는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용대〈산악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