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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칼럼>죽장에 삿갓 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1950년대 중반 논산훈련소 23연대의 나와 같은 소대에 별명이 「카루소」라고 붙은 훈련병이 있었다.명곡(?)도 잘 부르고 유행가도 잘 불렀다.휴식시간에 그가 뽑혀 나가 노래를 하면,유행가를 불러 주었으면 하고 기대하는 쪽으로 나 는 점점 변해 갔다.공자가 『시경(詩經)의 모든 노래에 공통하는 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더러운 점이 없다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고 한 말의 뜻을 내가 잘 깨달은 것도 이 시절이었다.공자가 뽑은 시경은 다름 아 닌 주(周)시대 말기의각 나라(봉건 제후국) 유행가 선집(選集)이었다고 한다.
그 카루소는 『방랑시인 김삿갓』을 잘 불렀다.「죽장에 삿갓」대신 우리 차림은 「M1 소총에 파이버 군모」였지만 「흰 구름뜬 고개 넘어가는 객(客)이 누구냐」는 물음형구절에서는 속으로그것은 「나」라는 대답을 무심결에 하고 있었을 것이다.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병영과,비록 비렁뱅이지만 술 한 잔도 있고 시 한수도 있는 김삿갓의 훨훨 자유로운 바깥세상과의 연결을 이 노래가 우리들 훈련병에게 만들어 주었다.
최근 KBS 『가요무대』에 가수 명국환씨가 출연해 이 노래는왜색표절이란 이유로 아직도 방송금지곡으로 남아 있다는 말을 했다.그래서 자기의 최대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이 노래는 아직도부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소비자는 폭군처럼 변 덕스럽고 무정하다.팬이란 이름의 인기가요 소비자도 마찬가지다.나는 40년래 내가 가장 자주 흥얼거리는 곡목에 드는 이 노래가 금지곡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났다.유행가니까 인기가 형체도 없이 사라질수도 있는 것이려니,나만은 이 노 래가 논산훈련소에서 유행가의위로를 처음으로 경험케 했기 때문에 특별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있거니 여기고 있었나 보다.
김문응 작사, 전오승 작곡인 이 노래는 알아 보니 68년 「왜색표절곡」이란 이유로 방송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일본 유행가『아사타로 쓰기야노 우다(淺太郎 月夜歌)』의 표절이라고 당시 한 재일교포가 알려 왔더라는 것이다.아사타로는 삿갓을 쓰고 다니는 일본 검객이었다고 한다.김삿갓은 삿갓을 쓰고 다니는 한국문인이었다.한국과 일본,문(文)과 무(武),이 두 삿갓 사이의대비(對比)가 표절이란 죄명을 묘하게 무늬 지운다.
요새 월요일 아침마다 법정에 불려 나오는 미결수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의 십팔번이 이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것도 묘한 인연이다.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군사독재 시절에 금지곡으로 지정된 노래를 그의 가장 신실했던 부하 전두환 씨가 십팔번으로 삼아 애창했다는 것은 全씨도 이 노래가 금지곡인지 몰랐기때문일 수도 있다.아니면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이 남한 유행가를 애창한다는 것처럼 독재자는 다른 사람에게는 금지한 것을 자기만은 즐기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
『방랑시인 김삿갓』을 만일 요새 유행하는 리듬 앤드 블루스로편곡해 요절할 만한 즉흥적 장식음을 붙여 가며 중모리 장단으로조관우가 리바이벌해 부른다면 그래도 왜색표절곡이라 해서 방송에못 나가게 할 수 있을까.민요풍의 노래에 표 절이란 도둑죄를 적용하는 것은 원저작권자의 고발과 그에 따른 원고.피고 양측의공방(攻防) 토론 없이도 타당한가.표절가곡 금지시효는 원곡의 저작권시효를 넘어서도 존속하는 것인가.
나는 최근 방송금지곡 『방랑시인 김삿갓』아닌 다른 「김삿갓」을 발견하고 소비자로서의 새 사랑에 빠져들고 있다.다름 아닌 소주 「김삿갓」의 맛이다.「진로」와 「그린」 등이 외국시장에서크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것도 반갑다.일본사람 이나 서양사람들이 소주에 대해 왜색 아닌 「한국색」시비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군사정부의 문화정책은 「왜색」을 이유로 금지곡지정을 휘두르는 것이 최대의 업적이었다고 후세의 해학적 역사가는 기록할지 모른다. 군사정권의 조세정책은 행여 양조장이 자유로 더 맛있는술을 만들까봐 막은 것이 가장 큰 업적이었을지도 모른다.이른바문민정부시대에 들어와서 국회가 의원입법으로 제정한 가장 우뚝한법률은 지방소주업자를 위해 각 도는 자도(自道)생산 소주를 50% 이상 소비해야 한다고 법률로 정한 것일 게다.프랑스산 포도주.영국산 위스키가 아무 제한 없이 들어오는 이 글로벌시대에말이다. 「김삿갓」은 이 반(反)글로벌적 50% 확보 따위에 안주(安住) 못하겠다며 죽장을 짚고 나선 한 지방소주 생산업자의 시 한 수 같은 창의.모험심.집념을 지닌 기업전략이었다기에더 반갑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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