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가 살아야 금리 얘기 꺼내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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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세계 각국에서 금리인상 논의가 활발하다.

경기가 상승흐름을 지속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올 여름께 정책금리를 올릴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이 경기 과열을 걱정해 금리를 올릴 태세고, 일본에서도 이제 제로(0)금리를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소리가 나온다. 미국의 금리인상 여부에 국제 금융시장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만은 이런 흐름에서 예외다. 금리인상 얘기는 들리지 않고, 시중 실세금리도 하향 안정추세를 보인다. 경기지표로 나타나는 겉모습과는 달리, 경제 구석구석에 허약한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각국의 금리인상 논의=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20일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이 더이상 미국에서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를 금리인상이 임박한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미국의 초저금리(연방기금금리 1%)가 자산가격의 버블과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며 미국은 금리를 올릴 때가 됐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초 올 연말께로 예상했던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이 8월께로 앞당겨질 것 같다"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중국도 1995년 이후 처음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할 움직임이다. 중국 인민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경기과열과 무역적자 가능성, 물가 상승 등의 문제를 풀기 위해 금리인상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에서는 제로금리 탈피 논의가 활발하다. 경제 상황이 뚜렷하게 좋아지고, 디플레도 완화되고 있는 데 따른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에 대해 후코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일본은행 총재는 20일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으로 본다"며 신중론을 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금리인상 논의를 반기는 분위기라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한국은 예외=한국도 경기지표를 봐서는 금리인상을 거론할 단계에 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3%에서 5.5%로 높이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8%에서 3.1%로 올려잡았다. KDI는 "수입물가가 계속 올라가고 수출활황으로 수요압력도 커지고 있다"며 "인플레 가능성에 관심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 1분기 중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 생산자물가도 4.2%나 각각 올랐다. 수출 호조와 외국인 주식매수로 돈은 자꾸 들어오는데 저금리정책이 지속되자 부동산투기 조짐까지 다시 일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금리인상 얘기는 꺼내지 못한다. KDI의 조동철 연구위원은 "현 상황에서 금리를 조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금리정책에 변화를 줄 시점은 성장률이 7%까지 올라갈 때"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연내엔 금리인상이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소리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도 "지금은 금리를 높여 총수요를 억제할 상황이 아니다"며 "구조조정과 노동생산성 향상, 원화 강세의 수용 등으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우리 경제는 지표만 번지르하지 수출을 빼고는 곳곳에 골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다한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 등에서 비롯된 내수 침체가 좀처럼 풀릴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대출금 상환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중소기업 대란설까지 돌고 있다.

정부는 투자와 내수를 되살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선 다소간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저금리정책을 계속 밀고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금리정책을 책임지는 한국은행도 여기에 수긍하는 분위기다.

현대경제연구원 노진호 연구위원은 "저금리 정책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물가가 불안해지면 시중 자금의 단기 부동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그럼에도 금리정책의 변화를 꾀할 수 없는 게 우리 경제의 큰 딜레마"라고 말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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