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12.대림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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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내가 준 돈은 뇌물이다.』 대림그룹 이준용(李埈鎔.58)회장은 올해초 5공비자금 수사와 관련한 법정진술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다른 그룹 회장들이 청와대에 건네준 돈을 『뇌물이 아니다』고 부인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가장 당혹한 것은 李회장의 측근들.이들은 3명의 변호사와 함께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자료까지 준비했으나 李회장은 『내가 알아서 발언하겠다』며 법정에 들어갔다.그리고 「뇌물」 공여사실을인정해버린 것이다.
죄에 대한 벌을 각오한 이 말 한마디는 기업경영에 대한 李회장의 평소 소신을 나타낸 사례로 볼 수 있다.
李회장은 93년12월 창업자이자 부친인 이재준(李載濬.95년타계)전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승계했다.취임 직후부터 그는 「공개경영」과 「자율경영」을 강조해왔다.
李회장은 『과거에는 공개경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도록 하는 불합리한 요인이 많았으나 이제는 여건이 좋아진 만큼 경영의투명성을 왜곡하는 행위를 하지말아야한다』 고 말 했다.부(富)가 존경받는 사회 가 돼야한다는게 李회장의 신념 이다.
李회장은 또 공무원들을 상대로 공식비용 외의 돈을 지출하지 말도록 지시하기도 했다.해외공사입찰 때 리베이트 문제가 걸려 있으면 수주를 포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사장단회의와 관련해서도 『별다른 비밀사항이 없으니 누구나 들어와 보도록 하라』고 했다.
이런 공개경영방침은 70년대 부친인 李전회장으로부터 이어받은것이라고 임직원들은 말한다.李전회장 시절 대림은 세무조사를 자주 받았다.李전회장의 형인 이재형(李載瀅.92년 타계)전국회의장이 야당생활을 한데도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따 라서 대림은 회계처리를 투명하게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李회장은 또 재계의 1등병(病)을 비판하는 특이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그는 『모두가 1등을 하고 싶어하는데 일류병은 불행도 가져온다』며 『뒤처지지 않고 발전하는한 2,3등도 좋다』고 강조한다.그는 이에 따라 1등을 하지 않아도 좋다며 대림산업이 1위 건설업체로 도약하는 내용을 담은 그룹발전계획을 수정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과묵한 성격의 李회장은 형식을 싫어한다.외국출장도 혼자 가며임원들이 공항에 영접나오는 것도 금지했다.외형늘리기 경쟁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李회장은 부회장과 사장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스타일이다.부회장으로는 친동생인 이부용(李富鎔.53)씨와 김병진(金炳珍.64).이정우(李鼎宇.61)씨 등 3명이 있다.이들중 金부회장은 대외업무를,이정우 부회장은 안살림을 총괄하고 있다 .
***이부용씨는 일 관여 안해 선대회장 때부터 대림은 친인척들의 경영참여를 되도록 배제해왔다.이부용 부회장은 친인척중 유일하게 대림그룹에 참여해왔지만 현재는 적(籍)만 두고 있을 뿐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부용 부회장은 대림요업 사장재직시 의욕적으로 사업을 벌여 한때 선대회장으로부터 『사업수완이 좋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바쁜 조직생활보다 여유있는 삶을 더 좋아해 현재 별다른 사업 없이 개인생활에 몰두하고 있다.
金부회장은 대림엔지니어링 회장과 대림정보통신 사장도 겸하고 있으며 회장부재시 정례 사장단회의를 대신 주재한다.엔지니어링업계의 원로인 그는 74년 대림그룹에 합류했다.91년 6억달러의태국 올레핀 석유화학공장 설립공사를 일본을 제치 고 따내기도 했다.그의 플랜트 수주솜씨는 석유화학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고임직원들은 말한다.
그는 컴퓨터마인드도 높아 그룹 사업다각화의 하나로 추진중인 정보통신사업도 직접 다듬고 있다.
이정우 부회장은 기획조정실을 맡으면서 그룹 안살림을 주도하고있다.그는 고(故)김학렬(金學烈)경제기획원장관의 비서관을 지낸관리출신.80년 대림그룹에 들어와 고려개발 사장을 지냈다.
이정우 부회장은 李회장이 간단하게 내린 지시사항을 잘 해석해사장들이 집행하도록 중간역할을 한다.그만큼 과묵한 李회장의 뜻을 잘 읽는 것이다.그룹의 주요문제는 매월 두번 열리는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결정된다.계열사 운영에는 사장들의 권한이 많은 편이다.전무 이하 임원인사는 사장의 의견이 대체로 반영된다고 한다. 안살림의 경우 이정우 부회장,재무통인 정인직(鄭仁稙.56)서울증권 사장,배기성(裵基成.54)대림코퍼레이션 대표이사 부사장 등 3명이 자주 협의한다.
***정인직.배기성씨 안살림 鄭사장은 대림산업의 주거래은행인한일은행 직원으로 사우디 대림산업 현장에 파견돼 근무하다 대림그룹으로 옮겼다.대림산업 전무와 부사장을 거쳐 94년 서울증권의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70년대말 은행원의 대규모 전직바람을 타고 기업인으로 변신한경영자중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그는 경리와 관리분야도 경험한 그룹 자금통으로 금융분야를 지휘하고 있다.
역시 한일은행 출신인 裵부사장은 80년 대림에 들어와 자금쪽에서 주로 일해왔으며 올 3월 현재의 자리로 승진했다.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그룹의 모기업이면서 주력업체인 대림산업에는 이정국(李正國.53).성기웅(成紀雄.56)씨 등 2명의 사장이 각각 건설사업부와 석유화학사업부를 이끌고 있다.
李사장은 서울대 토목과 졸업 후 건설현장을 두루 경험한 엔지니어.92년 상무에서 사장으로 3단계 발탁승진됐다.솔직한 성격과 공사현장에 대한 꼼꼼한 브리핑자세 등이 李회장 눈에 들었다는 후문.평화의 댐 현장사무소장을 맡아 1차공사를 마무리하고 구마고속도로 건설을 지휘하는 등 굵직한 건설공사 경험이 풍부하다. 成사장은 서울대 화공과 졸업 후 줄곧 석유화학업체에서만 근무한 정통 화공엔지니어.영남화학.동서석유.여수화학을 거쳐 호남에틸렌에서 일하다 79년 이 회사가 대림산업에 흡수되면서 대림그룹과 인연을 맺었다.주로 기술분야에서 근무했지만 생산분야의기획력이 뛰어나고 경영안목이 넓다는 평이다.배명진(裵命鎭.58)대림자동차 사장은 전문엔지니어들이 많은 대림그룹 안에서 언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최고경영자에 오른 경우.국제신문 부장으로 80년 해직돼 대림자동차에 기획부장 으로 들어왔다.93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를 때까지 대부분 총무.기획 등 지원부서에서 일했으며 추진력이 강하다.
선우현범(鮮于賢範.61)대림엔지니어링 사장은 지난해 5월 그룹이 액화천연가스(LNG) 민자(民資)발전사업 참여를 표방하면서 영입됐다.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20여년 동안 한국전력에서 근무한 뒤 한국가스공사 부사장과 한국기 술공업(주)대표이사를 지냈다.그룹 LNG발전사업 추진단장을 겸임하고 있다. ***부사장들 역할 돋보여 대림그룹에서는 부사장들의 역할이돋보인다.이들 부사장은 뚜렷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
대림산업의 건설사업부는 3명의 부사장이 트로이카체제를 형성한다.김동주(金東柱.62)부사장은 발전사업,김관수(金寬洙.58)부사장은 주택사업,노정규(魯正規.54)부사장은 해외사업본부를 각각 맡고 있다.
李회장은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다.이 가운데 장.차남은 최근주력업체인 대림엔지니어링과 대림산업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장남 해욱(海旭.28)씨는 86년 경복고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李회장의 모교인 덴버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다.컬럼비아대에서 응용통계학 석사를 받고 대림엔지니어링 플랜트사업담당 계장으로 일하고 있다.
차남 해승(海丞.27)씨는 미국 워싱턴 앤드 제퍼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대림산업 유화부문 경리부 계장으로 있다.
李회장의 뜻에 따라 차근차근 경영자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대림은 수년 전부터 발탁승진제와 임원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그룹색깔의 변화를 시도하고있다.건설위주의 사업도 정보통신과 금융 등으로 다각화하는 중이다. ***재계서“보수적경영”평가 李회장은 또 한 컨설팅업체에「2000년 뉴비즈니스」에 대한 진단을 의뢰하는 한편 그룹의 주특기를 살린 민자발전사업과 사회간접자본(SOC)투자사업에 강한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대림의 원칙주의경영이 어떤 형식으로 정착되고 전개될지 관심거리다.

<다음은 두산그룹편>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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