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용서받지 못할 이스라엘의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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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스라엘은 자국민을 보호할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가 오는 5월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동평화를 위해 바람직하다.그러나 북부 갈릴리의 이스라엘인을 보호한다거나 중동평화를 도모한다는 명분이 50만명에 이 르는 비무장레바논인을 강제로 퇴거시키고 거주지를 쑥밭으로 만드는 것을 정당화하진 못한다.
이스라엘이 전개한 「분노의 포도」라는 작전으로 5백여명의 레바논인이 숨지거나 다쳤다.
이스라엘이 적국으로 둘러싸여있을 때,패배가 곧 존망의 위기로이어질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아랍국의 적대행위에 대한 이스라엘의 잔혹한 보복은 이해될 수 있었다.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현재 인접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했거나 교섭중이다.이런상황에서 모든 위협에 두배 이상으로 보복하겠다고 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세계는 환영의 뜻을 보낼 수 없다.
이스라엘도 게릴라의 위협에 대처할 것인가를 놓고 딜레마에 직면했을 것이다.헤즈볼라의 투쟁이 치열해질수록 선거를 앞둔 페레스는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야당은 페레스가유약하다는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페레스는 레바논 에서 암약하고있는 자국의 첩자를 활용,헤즈볼라의 우두머리를 제거하는 조치를취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과거 이스라엘이 이 방법을 사용했을 때 헤즈볼라는 로켓 세례로 응답해왔다.페레스 주위의 조언자들은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초 강경수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레바논에 폭격이 가해졌다.포탄의 수는 점점 늘어갔지만헤즈볼라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누군가가-무고한 사람이라도-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한편 사태 해결을 논의하기 위해 이스라엘.시리아.레바논과 접촉한 관계국들은 「분노의 포도」의 또 다른 의도에 주목했다.헤즈볼라를 소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게릴라를 비호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피해를 주려 했다는 것이다.또 레바논은 게릴라를 통제할 여력이 없고,헤즈볼라 후원자로 알려진 시리아는 레바논 재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두 나라는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헤즈볼라가 시리아를 거역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란으로부터재정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각지에서 몰려드는 순교자를 기반으로다시 자살특공대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페레스의 정책이 여론 향배만을 배려한 결과는 아닐 것이다.그러나 코앞에 닥친 선거가 아니었더라면 『유약하다』는 야당의 비난에 괘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레바논에 폭격을 퍼붓자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이러한 상황이 「분 노의 포도」에 대해 냉소를 보내게 한다.
역사의 전환점에 선 이스라엘은 자국이 강할뿐 아니라 정직한 이웃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이스라엘은 레바논 폭격으로 평화를 추구한다지만 선제 공격을 일삼는 국가라는 사실을 보여줬을 뿐이다. [정리=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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