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애인의 날 특집-지체장애 신벽향씨의 하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불편은 이제 생활화됐어요.그런데도 하루 몇차례씩 좌절과 분노가 가슴을 훑고 지나갑니다.』 초등학교 3년때 동네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다쳐 쓰지 못하게 돼 목발을 짚고다니는 신벽향(辛碧香.31.여.한국교통장애인협회 상담원)씨.
3급 지체장애인 辛씨의 힘겨운 하루는 오전6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목욕탕에서 한손은 세면기를 잡고 한손으론 머리를 감아야한다.
침대정리하기.식사.외출복입기 등은 남보기엔 어떨지 모르나 오랜훈련을 통해 그런대로 할만해졌다.
오전7시30분쯤 일터로 나가기 위해 연립주택의 육중한 유리문을 간신히 밀고서 현관의 높은 턱을 딛고 내려오는 일도 보기만큼 쉽지는 않다.
지난 18일은 간절히 바라던 장애인기금 마련 첫 회의가 열려들뜬 기분으로 5백여 되는 골목을 내려와 신호가 유난히 짧은 것같은 화곡네거리 8차선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 택시정류장에 도착했다.
택시기사들은 목발을 짚고 서 있는 그녀를 애써 외면하고 지나간다.늘상 겪는 일이라 야속함도 없다.간신히 합승하기까지는 30분이나 걸렸다.그래도 자신을 태워준 택시기사가 고맙고 목발 때문에 불편해할 옆자리 승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다.
辛씨는 당산동 2층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가 오전9시30분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 당산역으로 갔다.
계단들은 늘 철벽같이 느껴진다.목발을 잡지않은 손으로 난간을붙잡아 한계단씩 셈을 세듯 올라가지만 난간은 키에 비해 너무 높고 굵어 붙잡기 어렵게 돼있다.
그래도 이날은 회의에 대한 기대로 힘든줄 모른채 계단을 거의정복(?)하는 순간이었다.
가쁜 숨을 길게 내쉬는중 옆에서 오르던 50대 남자의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됐어요』라는 짓궂은 질문에 辛씨는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원래 그래요』라고 쏘아대고 외면했지만 지하철을 내릴 때까지왠지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별 생각없이 물었겠지만 제 마음엔 큰 울림으로 번졌어요.대학 때 미팅 파트너가 가슴 아프게 했던 「언제 낫느냐」는말도 다시 떠올라 울고 싶었어요.』 회의장이던 D기업은 장애인고용촉진법 적용대상 사업장이기 때문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없었다.게다가 어찌나 비좁은지 돌아서는 것조차힘들어 애를 먹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들어왔다면 어떻게 하나』辛씨는 아찔한생각이 들었다.
辛씨는 오후에 사무실에 돌아와 전국 교통장애인 유자녀 78명에게 1명당 15만원씩 장학금을 보내기 위해 인근 은행에 갔다가 모노륨 바닥에 물걸레질을 한 것을 보고 넘어질까 두려워 마를 때까지 1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일반인들이 보 기에는 사소한 것들도 그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辛씨는 은행에서 나와 오후4시30분쯤 다른 장애인 친구의 차를 타고 인근 구청에 갔다.그러나 장애인 전용주차공간에 이미 「일반」차가 버젓이 주차해 있다.『만들지나 말든지….』 구청 출입구의 회전문은 그녀를 더욱 정신없게 만들었다.장애인들에겐 회전문은 정말 「무서운」 존재다.
『꿈에서는 항상 두팔을 휘저으며 걸어 다니지만 한번도 뛰어본적이 없다』는 辛씨에겐 버스의 출입문과 보도의 턱이 높은 것도야속하다.
辛씨는 그래도 6년째 교통장애인협회에서 완전무급의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장학금을 받은 어린이들이 바르게 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즐겁고,최근 6개월 사이에 교통장애인 13명을 한 택시회사에 취직시킨 것도 자랑스럽다.
전문대 사무자동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신체조건 때문에 취직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어머니의 배려로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다워드프로세서 학원 강사로 일하기도 했었다.
『나보다 더 힘든 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몸으로 가족과 사회의 냉대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무척 많아요.장애인이 정상인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해요.』 辛씨는 『1급 중증장애인에 대한 생활지원금이 겨우 월 5만원 정도이고 차량구입 대출조건도 현실과 동떨어져 허울뿐』이라며 『정부가 좀더 세심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현재 辛씨의 가장 큰 꿈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辛씨는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결혼하지 말고 수도자가 돼라 하셨고 그 말씀을 믿었지만 이제 결혼을 해야겠다』며 『장애인들은 결혼에 임박하면 이런저런 편견 때문에 진이 빠지지만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찾아보겠다』며 삶에 대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이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