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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야 휴전 제의 … 러시아는 공세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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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러시아 군이 9일(현지시간) 그루지야 국경 인근의 아르돈 계곡에서 두 발의 로켓을 발사했다. 로켓이 겨냥한 목표물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르돈 계곡 AP=연합뉴스]

러시아의 무력에 그루지야가 무너지고 있다. 무력 충돌 사흘째인 10일(현지시간) 수세에 몰린 그루지야가 즉각적인 휴전을 제의하고 교전지역에서 자국 군대를 철수시켰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공격 강도를 높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루지야가 8일 자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추진하는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에 대한 선제 군사 공격을 감행하자 러시아가 남오세티야를 돕는다는 명분 아래 무력 개입했다.

◇러시아 폭격 잇따라=러시아 전투기들이 10일 오전(현지시간)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 국제공항 인근 군 비행장에 여러 발의 폭탄을 투하했다고 그루지야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AFP 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30분쯤 세 차례 폭탄 공격이 있었으며, 거대한 폭발음이 트빌리시를 뒤흔들었다. 러시아는 또 자국 영토인 북오세티야를 통해 6000명의 병력을 교전 지역인 남오세티야로 투입했으며, 4000명의 병력을 친러시아 성향의 그루지야 내 자치공화국 압하지야로 들여보냈다고 그루지야 보안 당국이 밝혔다. 러시아 해군 함정들도 압하지야와 포티항 인근 흑해 해상에 파견됐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함정들은 무기나 각종 군수품이 그루지야로 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상 봉쇄에 나섰다고 통신은 전했다. 앞서 러시아 전투기들은 전쟁에 투입될 그루지야 군이 집결한 중부 고리 지역을 여러 차례 폭격했다. 그루지야의 주요 석유 수출항인 포티에도 공중 폭격을 가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9일 남오세티야와 인접한 북오세티야 수도 블라디카프카스로 날아가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 주민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리 카라신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침공으로 2000명 이상의 사람이 숨졌는데 대부분이 러시아 시민권자”라고 밝혔다고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이 전했다. 그루지야 외무부도 10일까지 150명의 자국민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후퇴하는 그루지야=그루지야 내무부는 10일 러시아 군과 교전을 벌이던 남오세티야 츠힌발리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9일 미국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러시아가 공격을 중단하면 휴전을 선언하고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나톨리 노고비친 러시아군 부참모장은 10일 “러시아는 그루지야로부터 교전 중단에 관한 어떤 공식적 제안도 받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15일간의 전쟁 상태를 선포하며 전의를 다지던 사카슈빌리가 갑자기 후퇴한 것은 무엇보다 러시아의 대응이 예상 외로 강경해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라크에 파병됐던 2000명의 자국군을 불러들이기는 했지만 모두 4만 명이 안 되는 병력으로 100만의 러시아군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믿었던 미국과 유럽이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지 않은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힘 못 쓰는 국제사회=유엔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0일 회의를 열어 그루지야 사태를 논의했으나 무력 사용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도 내지 못하는 등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서방 각국에 전화를 걸어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 중단을 촉구하는 데 힘을 모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무시하고 있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 군은 그루지야 군에 의한 대량 학살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남오세티야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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