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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경단녀’를 다시 뛰게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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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간호사로 일하다 결혼 후 18년간 전업주부로 지낸 이혜경(48)씨도 그 점에 끌려 요양보호사가 됐다. 매주 월~금요일 오후 1~5시 복지관에서 소개받은 할머니 댁에 가서 식사를 챙겨드리고 목욕을 돕는다. 수입은 월 50만원 대로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이씨는 만족한다고 했다. “남들은 거저 봉사도 하는데 나는 노인과 가족들에게 좋은 일 해준다는 보람을 느끼며 돈도 버니 더 바랄 게 없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 산모·신생아 도우미, 가정봉사원 등 이른바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확충은 정부가 추진 중인 여성 고용 활성화 대책의 핵심이다. 사회서비스가 여성에 적합한 직종이기 때문이란다. 또 으레 주부 몫으로 돌려졌던 일을 사회서비스 종사자가 대신 해줌으로써 더 많은 여성이 취업전선에 뛰어들도록 하는 부수적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복지 수요가 갈수록 커지리란 점, 결혼 후 별 경험을 쌓지 못한 여성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타당한 정책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고학력 경력 단절 여성을 일터로 끌어내기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봉사정신을 발휘해야 수긍할 정도인 저임금, 전문성을 인정받기 힘든 일의 성격 탓이다.

고령화·저출산 시대가 펼쳐지며 여성 인력의 활용은 우리 사회의 시급한 화두가 됐다. 그중에서도 경쟁력 있는 고학력 여성을 이대로 사장시켜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4.8%(2006년 기준)로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60.8%)에 못 미친다. 특히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60.2%)은 OECD 국가 중 최저로, 회원국 평균치(82.3%)와의 격차가 현격하다. 더욱이 일반적인 여성의 취업곡선은 M자형인데 비해, 고학력 여성의 경우 아예 재취업을 시도하지 않아 L자형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이 ‘자녀 교육 매니저’ 노릇을 팽개치고 나설 만큼 마음이 동하는 일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학력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발굴에 더욱 주력할 필요가 있다. 대학 전공이나 과거 직장 경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좀 더 전문적인 직종을 찾아주자는 것이다. 여성부와 서울시 주도로 서초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실시 중인 초등 영어강사 양성 과정이 좋은 선례가 될 만하다. 영어 전공자들을 위주로 전문교수법을 가르친 뒤 취업까지 알선해주는 이 프로그램은 대졸 이상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20명 안팎을 뽑았는데 100명 이상이 몰려 영어 면접을 해 추렸을 정도다. 무역회사에 6년간 다니다 둘째아이 출산 후 일을 그만뒀던 김화영(32)씨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가 지난해 이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영어학원 교사로 일하는 그의 연봉은 2000만원 수준. 김씨는 “예전 급여 수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발전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여성들도 눈높이를 확 낮춰 일단 재취업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보다 근본적으론 일과 가정이 양립하기 쉬운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 여성이 결혼·출산·육아 때문에 일을 접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용 유연성이 낮아서 남자고 여자고 재취업이 쉽지 않은 국내 실정을 고려하면 그쪽이 보다 효율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