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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칼럼>잔디밭의 馬賊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올봄도 나는 클로버와의 싸움을 시작했다.집 마당에 잔디는 아직 땅위로 새싹을 틔우지 않고 있다.그러나 잔디를 망쳐 놓는 클로버는 냉이 쑥 씀바귀 꽃다지 강아지풀 민들레 등과 함께 이미 초록빛 잎이 돋아났다.총중에는 꽃을 활짝 피운 놈들도 있다.하나 하나 보면 초봄의 이 야생 풀꽃들은 견줄데 없이 아름답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우리집 마당에 관한한 나는 잔디를제외한 모든 다른 풀들을 싸잡아 「잡초」라고 몰아세우기로 결정했다. 그 가운데 불행하게도 클로버만큼은 원수로 삼고 있다.「원수를 맺지 말라(讐怨莫結:수원막결)」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훈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짓이다.원수 맺어서 안될 존재가 어디사람만이랴.자연은 어떤 은인보다 더 큰 은혜를 사람 에게 베푼다.내가 같은 풀 가운데 클로버를 유독 미워하는 잘못을 범하고있다면 그건 다만 잔디를 기르기로 한 나의 선택 때문일 따름이다. 겨울은 클로버가 가장 본색에 가까운 빨치산 모습으로 활약하는 시간이다.이 점은 이른 봄에 드러난다.군데 군데 몇개씩 클로버 잎사귀가 보이는 것을 깨닫는 때가 되면 나는 게으름을 억지로 추스르고는 큼지막한 드라이버를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잎사귀 하나 밑을 파본다.겨울 동안에 통통하게 살이 쪄 정맥혈관처럼 퍼렇게 이리 저리 끝 모르게 뻗어 있는 줄기가 드라이버를꽂았다가 젖힐 때마다 드러난다.잔디와 클로버는 다같이 땅 밑으로 줄기를 뻗어 번식한다.기가 막힌 것 은 클로버를 뽑아내려면잔디를 상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클로버는 반드시 잔디 줄기를 물귀신처럼 끌어안고 뻗어 나간다.잔디가 먹을 영양,잔디가 뻗을 자리를 차지하고는 잔디를 해치며 자신만 튼튼하게 자란다. 나에게 클로버 뽑기는 집뜰에 잔디를 심은 이래 약 10년동안 해마다 거듭하는 싸움이다.담 없는 단지 주택인데 옆 집들은 진작부터 좋은 잔디 밭을 가꾸어 오고 있었다.되는대로 내깔겨 둔 우리집 마당에서 자란 잡초가 씨앗을 잔뜩 바람 이나 도둑고양이 털에 실어 옆집 잔디 마당에 내려 앉히고는 신나게 번식한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이 말은 비난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생각했다.게다가 그 즈음 나는 옆집들의 잔디 마당이 순수해 보이는데 좀 이끌리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가물 때엔 지하수수도를 틀어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려 주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잔디를 기르기 시작했던 첫 몇 해는 「올해는 클로버를 완전히뽑았으므로 우리 마당에 다음 봄부터 클로버는 구경도 못할 것」이라고 노력의 결과에 대해 너무도 낙관했다.나는 그 후 「잡초」는 하늘이 내려 보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클로버에게 완승을 거둘 수는 없어!』 집 안마당에 잔디를 기르는 것은 서양서 건너온 살림 풍속이다.우리 나라에서 잔디는 무덤이나 개천 둑에 입히는 것쯤으로 알던 풀이다.무어든 보기만하면 대뜸 핀잔부터 하기 좋아하는 친구가 찾아와서는『자네 뭘 좀 아는 사람인줄 여겼더 니,집안에다 잔디는 왜 입혔는가.마당 떠내려갈까봐 그랬는가.차라리 채마 밭이라도 가꾸어 상추 쑥갓이라도 뽑아 먹을 일이지』라며 갈군다.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이왕 서양식으로 뜰에 잔디밭을 만들려면 옆집처럼 서양 종자 잔디를 심 는게 나았을 거야.이건 잔디가 아니고 떼야.재래종 잔디는 이름만 금잔디지 이게 어디 잔디라고 할 수 있나.』 또 있다.내가몇 잔 술과 햇살과 노동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 클로버 뽑는다고 낑낑대는 꼴을 본 한 친구가 말했다.『잔디 마당은 너무서구 자본주의적이다.한가지 풀을 좋아해 다른 풀을 살생하다니.
그런 줄 몰랐더니 자네도 영판 속물이로군.』 클로버도 서양서 온 풀이다.토끼처럼 번식력이 좋아선지 아니면 토끼가 잘 먹는 풀이라서 그랬는지 우리나라 말로는 토끼풀이라 부른다.목초로서는그저 그만이라지만 한번 들여놨다 하면 나가주지 않는다.농업전문가인 내 막내 동생은 클로버에 특효가 있는 제초제(除草劑)를 마당에 뿌려 보라고 한다.나는 이 권고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다만 올해도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은 노력이나마 기울여 클로버뽑기는 계속할 것이다.
친구의 말은 맞다.나는 속물이다.이 맞는 말을 한 친구를 나는 시건방진 녀석이라고 단정했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잔디 마당이 서구 자본주의적이라는 말도 그럴싸하다.그렇다면 잔디밭의 마적(馬賊)인 서양서 온 클로버는 무슨주의적이라고 해야 좋을 것인가.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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