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유가 하락‘주식 → 채권’ 바꿔 탈 기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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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28면

투자자들의 더위를 식혀줄 반가운 뉴스가 지난 주말 날아왔다. 국제 유가(WTI 기준)가 8일 배럴당 4.8달러(4%) 급락해 115달러 선까지 밀렸다는 소식이다. 덕분에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302포인트(2.7%)나 뛰었다.

유가는 지난달 11일 사상 최고치(147달러)를 기록한 뒤 22%나 떨어졌다. 다른 원자재와 곡물 값도 비슷한 흐름이다. 옥수수는 최고치에서 35%, 콩은 28% 급락했다. 구리·알루미늄 등 19개 원자재를 묶은 CRB지수는 지난달 3일 최고치 대비 18% 떨어졌다.

그동안 글로벌 증시를 짓눌러 온 요인 중의 하나가 유가 문제였던 점을 감안하면 투자자들은 한숨 돌리게 됐음이 분명하다. 일부 전문가는 특정 상품가격이 정점에서 20% 이상 떨어지면 대세 하락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투기세력의 이탈에 따른 거품 빠지기의 수준을 넘어 트렌드 자체가 바뀌는 변곡점을 그렇게 본다. 유가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떨어지면 그 영역에 들어서는 셈이다.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우세하다. 무엇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헤매는 글로벌 유동성이 아직 너무 많다. 지난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리를 동결하면서 연내 금리 인상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경기침체 걱정 때문에 도저히 돈줄을 조일 수 없음을 실토한 셈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주 금리를 동결했다. 다만 ECB는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계속 열어 놓았다. 만약 FRB가 금리를 묶어두는 상황에서 ECB가 금리를 올리면 달러화는 다시 약세로 기울고, 달러화로 결제되는 국제 유가는 튀어 오를 수 있다.

긴장을 늦추기 힘든 변수는 또 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전쟁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그루지야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송유관이 지나는 전략 요충지다. 전쟁이 심해지면 원유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 게다가 중동지역의 이스라엘-이란 간 충돌도 아직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더구나 유가가 여기서 더 떨어지더라도 글로벌 경기가 호황으로 반전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유가 하락 자체가 경기 하강을 앞서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유가 하락 흐름이 이어지더라도 배럴당 100달러 밑으로까지 떨어지긴 힘들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지난해 평균 유가가 70달러대였다. 우리 정부가 올해 경제운용계획을 짜면서 내다본 유가는 80달러대였다. 100달러대의 유가는 여전히 경제를 압박하기에 충분하다.

증시의 단기 반등 흐름에 흥분해서는 안 될 일이다. 주가는 누가 뭐래도 경기 흐름과 기업 실적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거울이다. 이번 유가 하락에 힘입어 과연 글로벌 경기가 회복 기조로 돌아설 수 있을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섣불리 반등하는 시장에 뛰어들기보다 과도하게 들고 있는 주식(또는 펀드)을 줄이는 기회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때마침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5.25%로 올렸다.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유가가 떨어지고 경기 하강이 본격화하는 점을 감안할 때 한은이 금리를 더 올리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당장 인플레 기대심리를 꺾으면서, 하반기 중 써먹을 금리 인하 카드를 넉넉히 확보해 두자는 심산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아무튼 한은 덕분에 고금리 금융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됐다. 발품을 팔면 6∼7%대 상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채권형 펀드도 5%대 중반의 금리가 나오고 있다. 채권형 펀드는 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시세 차익까지 챙길 수 있다. 투자자들은 모처럼 고금리 사냥의 묘미를 만끽할 호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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