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를 키운다. 펨브로크 웰시 코기 종인데 팔불출이 되기를 각오하고 설명하자면, 영국 여왕이 사랑하는 개로 유명하고,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퀸’에도 펨브로크 웰시 코기가 여러 마리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에 나오는 그 개”라고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많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내가 키우는 녀석은 혈통서까지 갖춘 제법 근사하게 생긴 놈으로 태어난 지 석 달째에 우리 집에 와서 다섯 해를 넘기면서도 잔병 한 번 앓은 적이 없다. 녀석의 이름은 ‘띠룽이’다. 사전에도 없는 이상한 말을 이름으로 붙인 것은 굳이 따지자면 의태어에 가까운데, 녀석을 처음 본 순간 머릿속에 딱 떠오른 말이 ‘띠룽’이었기 때문이다.
예방접종을 하러 동물병원에 갈 때 “띠룽이 보호자님”이라고 불리면 그 이름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동물병원 간호사도 띠룽이를 본 뒤에는 “아, 왜 띠룽인지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불릴 때는 ‘좀 멋진 이름을 붙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자기가 키우는 개나 고양이 이야기에는 누구나 침이 마르는데, 나는 그게 왠지 자식 자랑만 같아서 드러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번 시작하니 끝없이 이야기가 늘어진다. 내친김에 더하자면, 띠룽이는 꽤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개다. 종일 사람만 졸졸 쫓아다니고 놀아달라고 떼쓰기만 하는 개가 아니다.
정 심심하면 일하고 있는 내 발치에 와서 조금 보채다가, 내가 잠깐 띠룽이와 놀면서 쉬겠다고 마음먹은 뒤 껴안으며 쓰다듬고 있으면 어느새 쪼르르 제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놀거나 베란다로 달려나가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그렇다고 활기차지 않은 건 아니다. 녀석은 무슨 용무가 그리 많은지 좁은 집 안을 바삐 뛰어다니며 잘 논다.
그런 띠룽이가 요즘은 온종일 잠만 잔다. 그리고 해가 진 뒤면 혼자서 바쁘다. 물그릇 긁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물을 줘야 할 때도 많다. 그러니까 낮에 잔다고 해서 건강하지 않거나 움직임이 없는 게 아닌 것이다. 더운 낮에는 실컷 자고 시원한 밤에 열심히 움직인다. 녀석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여름을 현명하게 나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이제야 녀석이 얼마나 현명한지 깨닫고 배운다.
이번 주는 참 더웠다. 이 글이 나갈 일요일까지도 더위는 계속될 거란다. 더운 낮에는 띠룽이처럼 잠만 잘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한 박자 늦춰 일해야겠다.
글쓴이 조동섭씨는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