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서 배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호 15면

나는 개를 키운다. 펨브로크 웰시 코기 종인데 팔불출이 되기를 각오하고 설명하자면, 영국 여왕이 사랑하는 개로 유명하고,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퀸’에도 펨브로크 웰시 코기가 여러 마리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에 나오는 그 개”라고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많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내가 키우는 녀석은 혈통서까지 갖춘 제법 근사하게 생긴 놈으로 태어난 지 석 달째에 우리 집에 와서 다섯 해를 넘기면서도 잔병 한 번 앓은 적이 없다. 녀석의 이름은 ‘띠룽이’다. 사전에도 없는 이상한 말을 이름으로 붙인 것은 굳이 따지자면 의태어에 가까운데, 녀석을 처음 본 순간 머릿속에 딱 떠오른 말이 ‘띠룽’이었기 때문이다.

예방접종을 하러 동물병원에 갈 때 “띠룽이 보호자님”이라고 불리면 그 이름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동물병원 간호사도 띠룽이를 본 뒤에는 “아, 왜 띠룽인지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불릴 때는 ‘좀 멋진 이름을 붙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자기가 키우는 개나 고양이 이야기에는 누구나 침이 마르는데, 나는 그게 왠지 자식 자랑만 같아서 드러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번 시작하니 끝없이 이야기가 늘어진다. 내친김에 더하자면, 띠룽이는 꽤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개다. 종일 사람만 졸졸 쫓아다니고 놀아달라고 떼쓰기만 하는 개가 아니다.

정 심심하면 일하고 있는 내 발치에 와서 조금 보채다가, 내가 잠깐 띠룽이와 놀면서 쉬겠다고 마음먹은 뒤 껴안으며 쓰다듬고 있으면 어느새 쪼르르 제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놀거나 베란다로 달려나가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그렇다고 활기차지 않은 건 아니다. 녀석은 무슨 용무가 그리 많은지 좁은 집 안을 바삐 뛰어다니며 잘 논다.

그런 띠룽이가 요즘은 온종일 잠만 잔다. 그리고 해가 진 뒤면 혼자서 바쁘다. 물그릇 긁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물을 줘야 할 때도 많다. 그러니까 낮에 잔다고 해서 건강하지 않거나 움직임이 없는 게 아닌 것이다. 더운 낮에는 실컷 자고 시원한 밤에 열심히 움직인다. 녀석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여름을 현명하게 나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이제야 녀석이 얼마나 현명한지 깨닫고 배운다.

이번 주는 참 더웠다. 이 글이 나갈 일요일까지도 더위는 계속될 거란다. 더운 낮에는 띠룽이처럼 잠만 잘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한 박자 늦춰 일해야겠다.


글쓴이 조동섭씨는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