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유모차와 방명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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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디로 사라졌는지 요즘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울역 지하도의 출입구 계단 아래쪽에서 그 부자(父子) 거지와 가끔 마주쳤다. 아버지(로 추정되는)는 적어도 사십은 넘어 보였고, 곁의 아이는 잘해야 서너 살 됐을까. 둘 다 때에 전 입성에 꾀죄죄하기 짝이 없는 몰골이었다. 지나칠 때마다 오죽하면 동냥에 나섰을까 측은해지면서도 가슴 한켠에서는, 특히 추운 겨울에는 화가 솟았다. 하필이면 왜 아이를 데리고 나섰는가. 혹시라도 아이 덕분에 동전 몇 닢 더 짤랑 떨어지길 바랐다면 당신은 정말 잘못하는 거다, 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한 후배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도에 사는 그의 딸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몇 달 전 수업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시끄럽다며 단체 벌을 주었다.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꿇고 있으라고 했다. 벌을 받는데 선생님이 말했다. “대통령 선거 때 엄마·아빠가 이명박 찍은 사람 손들어봐.” 여럿이 손을 들자 선생님은 “손 안 든 사람은 책상에서 내려가도 좋다”고 했다. 한 학생이 항의를 했다. “엄마·아빠가 찍은 건데 왜 저희가 벌 받아야 하나요.” 담임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 너희도 내려가라”며 벌을 거두었다. 후배는 학교에 항의하려다 “아이에게 피해가 간다”는 부인의 만류에 전화기를 닫았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걸맞은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이 제정된 게 불과 85년 전인 1923년이다. 서양에서 300년 전까지는 ‘미래의 희망으로서의 아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어린이는 덩치 작은 어른쯤으로 취급받았고, 중세에는 ‘작은 악마’로 인식되기도 했다. 10세가 되기도 전에 일을 배웠고 어른들 틈에 끼여 술과 담배를 함께했다(필립 아리에스 『아동의 탄생』). 그러나 선각자들의 숱한 노력과 희생 덕분에 ‘아동’은 보호와 교육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지금도 5~17세의 아동 노동자가 전 세계에 2억4600만 명이나 있다. 전장에 내몰린 18세 이하 소년병도 3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은 ‘서울역 아이’가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상황이 무척 나아졌고 지금도 개선되고 있다고 나는 본다.

문제는 어른들이다. 서울광장 촛불시위 때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들이 있었다. 만약 광장 내에서 평화적으로 집회가 이루어질 때만 참여하고 진압 전에 자리를 피할 요량이었다면, 그것까지는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진압작전에 맞서 유모차를 들이민 여성들까지 ‘엄마’라고 불러줄 수 있을까. 위험을 무릅쓰려면 혼자 나서지, 무슨 권리로 아이까지 경찰의 살수차 앞에 내모는가. 서울역 지하도의 아이 아버지와 다를 게 무엇인가.

자칭 진보를 외치면서 진보의 가치를 스스로 허무는 일이 또 벌어졌다. 조계사 방명록 동영상 파문이다. 맞춤법도 틀린 삐뚤빼뚤한 글씨로 ‘게세끼…’를 쓰고 있는 초등생 곁에서 어른들이 웃고 있다. 그런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자랑스럽게 인터넷에 올렸다. 아이들이 재학 중인 마산 S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학교의 입장’ 글에서 “어떤 아이들은 비속한 말을 쓰고 초코파이와 부채를 받았고, 그 옆의 아이는 욕을 쓰고 사탕과 젤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초코파이와 부채, 사탕, 그리고 젤리와 바꾼 동영상이 지금은 아이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했다. 농성장의 어른들은 대통령만 비판하면 아이들이 무슨 욕설을 해도 좋다고 느꼈을까. 어떻게 한 사람도 바로잡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썼다는 둥, 보수 언론이 사태를 증폭시켰다는 둥 구구한 변명에 기만 더 찰 뿐이다. 왜 잘못한 일은 항상 남의 탓으로 돌리는가. 교실에서든 농성장에서든 제발 아이들까지 정치에 이용하지는 말자. 어른들끼리 편갈려 치고받는 모습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질렸다.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