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총선 신한국당 善戰의 숨은 일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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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표방송이 진행된 11일밤,서울여의도 신한국당사 3층 상황실.대형TV에서는 계속 「신한국당 압승 예상」이 방송되고 있었다.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이회창(李會昌)선대위의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독설가로 알려진 옆자리의 강삼재(姜 三載)사무총장도 입을 다물었다.박찬종(朴燦鍾)수도권선대위원장은 방송이 시작되자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각 지구당에서 후보들이 환성을 지르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총선의 「일등공신」들.어쩌면 그래서 싸움을 끝낸 이들은 더욱만감이 교차하는지도 모른다.총선싸움은 물론 각 지역에서 벌어진다.그러나 싸움을 지원,독려하는 「장군(將軍)」들의 역량은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
그래서 예상을 뒤엎은 신한국당의 압승은 중앙의 지원유세,권역별 맹주들의 활약과 교묘한 작전수립 등 이들 공신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같다.
유세의 일등공신은 이회창선대위의장과 박찬종수도권선대위원장,이홍구(李洪九)고문 등 영입인사 「빅3」이었다.
정치에는 백면서생격이던 李의장은 올1월 신한국당에 전격 입당한뒤 「어렵고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당시 신한국당은 『제1당도 흔들린다』는 말이 나돌 지경이었고 당은 「대쪽 이회창」을 얼굴로 내세운 것이다.
그는 2월15일 충남예천의 선영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총선하루 전날 자정까지 전국을 샅샅이 훑었다.6.27선거에서 참패한 신한국당이 거대여당으로 화려한 재기를 한데는 그의 이미지에힘입은 바 크다는 분석이다.
수도권을 총책임진 朴위원장의 「위력」은 집권당이 골수 야도(野都)서울에서 사상 처음 명실상부한 제1당이 된 사실에서 곧바로 드러난다.그는 당이 지정해준 정당연설회 뿐만 아니라 매일 새벽 지하철을 돌며 유권자들을 상대로 『기호 1번 』을 외쳐대는 등 혼신을 다했다.또 『표를 받아오라』며 전국구 후보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TV유세를 통해 탁월한 연설실력을 발휘하는 등「만만찮은 박찬종」을 확인시켰다.李고문은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못받았어도 전남과 강원.제주 등 「빅2」가 커버하지 못하는 지역을 맡아 고군분투해 승리의 일역이 됐다.
지역사령관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제1공신은 물론 김윤환(金潤煥)대표다.그는 『대구.경북이 무너진다』는 우려속에서 경북에 상주하며 안간힘을 썼고 예상치 못했던 전과(戰果)를 올렸다.
자민련이 충남 싹쓸이를 못한 것은 경북의 선전에 힘입은 바 크다.그는 결국 자민련의 바람을 잠재운 것이다.
경기지역의 이한동(李漢東)국회부의장도 큰소리칠 만하다.이 지역은 마지막까지 혼미를 거듭했고 장학로(張學魯)사건 이후에는 『절반도 못건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다.그러나 「중부권 대권론」을 천명하며 종횡무진한 결과 경기지역의 우세를 확보해 국민회의를 패배로 몰아넣었다.
경남.부산의 최형우(崔炯佑)의원은 이 지역이 「현정권의 텃밭」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더했다.『부산에서 1~2석,경남에서 5~6석이 날아간다』는 게 초기의 여론조사 결과였다.부산석권,경남피해 최소화라는 결과는 지역맹주인 崔의원으로선 내세울만한 성과다.
유세와 더불어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양대 요인중 하나가 전략이다.아무리 맹장들이 뛰어도 무(無)전략 아래선 백전백패다.청와대의 이원종(李源宗)정무수석과 당의 강삼재사무총장,강용식(康容植)선거상황실장은 전략본부를 차고앉은 숨은 공신 들로 분류된다. 姜총장과 李수석은 후보들을 선발하는 공천과정을 책임졌고 전체 선거판을 굴려나가는 조종사 역할을 했다.『서울에서 1당을이룬다』던 姜총장의 호언은 현실이 됐다.최초의 여당 전국구 3선이 된 康실장은 선거의 갖가지 대소사(大小事)를 책임졌다.
그러나 누구보다 가장 큰 공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세웠다고 해야 할 것같다.그는 지난 6.27선거 패배 이후 끊임없이「설욕」을 다짐했고 그 다짐을 실현했다.「정치9단」의 화려한 승리였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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