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금속·곡물 … 원자재 값 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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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원유와 금속·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했다. 미국 경제를 비롯한 세계 경제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수요가 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슬슬 거품이 빠지는 모습이지만 일시적인 현상인지, 장기적인 추세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유(WTI)는 전날보다 3.69달러(3%) 내린 배럴당 121.41달러로 떨어져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는 120달러를 밑돌기도 했다.

원유 선물에 투기를 해 유가 급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헤지펀드의 입장도 달라졌다. 경제·금융정보업체인 마켓워치에 따르면 원유 선물시장에서 앞으로 가격이 떨어진다고 보는 쪽이 오르리라고 예상하는 쪽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2월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원유 수요가 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투기 세력에 심리적인 타격을 준 것 같다”며 “유가는 100달러 선에서 하향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 가격과 곡물 가격도 떨어졌다. 구리 값(9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4% 떨어진 파운드당 3.44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백금·알루미늄·니켈·납·아연 등도 가격이 떨어졌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옥수수 가격(12월 인도분)은 29.5센트 떨어진 부셸당 5.55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고 6월의 최고치보다 30% 하락했다. 콩 가격(11월 인도분)도 가격제한폭인 70센트까지 떨어지며 부셸당 12.95달러를 기록했다. 시카고의 컨설팅업체인 MF글로벌의 애널리스트인 에드워드 마이어는 “상품 가격이 당분간 반등세로 돌아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우리 경제에 당장은 단비 같은 소식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둔화가 그 원인이라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해외의 수입수요가 위축되면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이날 유가가 크게 하락한 것도 6월 미국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줄고,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정부 보고서가 나온 게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미 상무부는 이날 6월 개인소비 지출이 전월보다 0.6% 증가했지만, 물가는 0.8% 올랐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소비 증가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올라 실질 소비지출은 전월보다 0.2% 감소한 것”이라고 전했다. 고용 사정도 나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미국 기업의 해고 건수는 57만926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늘었다.

은행 등 금융회사를 압박하고 있는 신용위기도 끝나지 않았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5일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이번 사태(신용위기)는 100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위기”라며 “은행의 도산이 이어지고 이들이 정부의 구제금융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의 집값이 회복돼 주택담보와 연계된 채권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며 “은행들이 자본 확충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주가가 안정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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