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명품 뛰어넘는 ‘클래식 재킷’ 만들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패션 디자이너 채규인(38)은 흔히 ‘명품’이라 불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브랜드에 대해 “왜 그것을 우리가 명품이라 부르며 칭송하는지 모르겠다.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디자이너일 순 있어도 그런 브랜드가 (보통 옷보다) 훨씬 더 대단한 무엇이라고 생각하진 말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초 자신의 브랜드를 처음 발표하기 전까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인 존 갈리아노와 함께 작업했던 그다.

디오르는 흔히 루이뷔통·샤넬·에르메스 등과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 명품’으로 불린다. 그는 갈리아노의 10명 남짓한 디자인팀의 일원으로 4년간 함께 일했다. 자신이 속한 브랜드의 이름을 달긴 했지만 거의 채씨 혼자 창작해낸 당시의 의상은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 중앙박물관에 현대 패션을 대표하는 옷으로 전시되고 있을 만큼 갈리아노의 팀에서도 눈에 띄는 활동을 벌였다.


그는 “우리가 언제부터 우리 옷을 버리고 서양 옷을 입게 됐는지가 너무 궁금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올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의 브랜드인 ‘맘미페어 드 룩스’의 세 번째 패션쇼를 열었다. 지난달 9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에서 열린 ‘코오롱패션 옴므 패션쇼’에 모습을 드러낸 그를 만났다.

-우리는 이미 프랑스·이탈리아의 큰 브랜드를 ‘명품’이라 부르는 데 익숙하다.

“요즘 세계 패션 업계에서 명품으로 불리는 것들은 대개 ‘아시아 사람들의 창조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아시아 사람들이 소비하는 구조’다.(※채씨가 디오르에서 일했던 것처럼 현재 세계적인 브랜드의 디자인팀에는 동양계가 점점 늘고 있으며 명품 시장의 주소비처도 아시아 지역의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다) 앞으로 이런 경향은 더 강화되면 됐지 사그라지진 않을 것이다. 동양인의 창의력과 경제력으로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서양의 이런 (명품) 브랜드다. 우리가 이들을 명품으로 우대하면서 우리 브랜드를 갖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왜 우리에겐 그런 브랜드가 없을까.

“샤넬을 봐라. 처음엔 단지 혁명적인 패션 디자인으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은 ‘클래식’의 반열에 올랐다. 샤넬이 대단해진 것은 과감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샤넬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을 존중해 줬다. 그리고 다시 그들은 더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브랜드를 명품이라 부르며 무조건 추앙한다. 정작 존중받아야 할 혁신성이나 빛나야 할 창의성은 관심 밖이다. 이처럼 서양의 것을 동경만 해선 샤넬 같은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당신의 전략은 무엇인가.

“새로운 클래식이다. 난 남성복을 대표하는 아이템이 ‘재킷’이라고 생각한다. 패션 디자이너 100명에게 ‘무인도에 갈 때 꼭 가져가고 싶은 단 한 벌의 옷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90명 이상은 ‘재킷’이라고 답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난 재킷을 더 비대칭적으로 만들고 더 불편하게 창작해 낸다.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야 궁극적으로 편한 옷을 만들 수 있고 디자인을 더 비틀어 보아야 더욱 익숙한 디자인이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내 작품의 스타일도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남성복 디자이너면서 여성 모델에게 재킷을 입혀 패션쇼에 세우는 이유는 뭔가.

“남성과 여성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남성용으로 디자인한 재킷을 여성 모델이 소화할 땐 분위기가 다르다. 그런 연출에서 디자이너가 의도하는 것은 또 하나의 실험적인 스타일이다.”

-실험적인 스타일은 일상 생활에서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패션쇼에서 보여주는 것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일 뿐이다. 상품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패션에서의 상상력에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당당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우리가 주도하는 ‘새로운 클래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 채규인은 1996년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의 파리의상조합학교와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99년 파리 국제신발디자인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그는 2002년부터 ‘존 갈리아노 디자인 팀’의 일원으로 일했다. 이 팀은 브랜드인 ‘존 갈리아노’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여성복 디자인을 맡고 있다.

강승민 기자

▶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 섹션 '레인보우' 홈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