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건국 60년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산업화와 민주화가 근대화의 큰 목표라고 할 때, 서양이 200년 이상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를 우리는 짧은 기간에 달성했다. 여기서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위대함’ 속에 빛도 있고 그늘도 있으며, 미래의 숙제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위대함’은 주로 ‘시간적 압축성’인데,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서 오는 부작용과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천천히 한꺼번에 잡는 것이 순리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건국 후 40년 동안은 ‘산업화’를 잡느라 ‘민주화’에 몰입하지 못했고, 최근 20년은 ‘민주화’를 잡느라 경제에 올인하지 못했다. 두 바퀴로 굴러야 할 수레가 한 바퀴로 기운 것이다.

왜 민주화가 늦었나. 근원은 식민지 경험과 반공에 있었다. 일제의 강점이 남북 분단과 권위주의를 잉태하고, 분단과 6·25의 고통이 반공을 초헌법적 국시(國是)처럼 만들었다. 반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발전이 중요했고, 경제를 위해서 민주주의에 몰입하지 못한 것이다.

최근 20년 동안에 민주화가 진전된 것은 경제성장에 힘입은 바 크다. 경제가 커지니 반공과 독재의 명분이 퇴색했다. 그래서 민주화가 가능했던 것은 산업화의 덕이요, 산업화는 역으로 민주화에 빚을 진 것이다. 이제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한 지금의 처지로는 서로가 진 빚을 갚은 셈이다. 그래서 지난날의 감정을 털고 서로에게 감사하면서 손을 잡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환골탈태할 때라고 본다.

거시적으로 보면, 우리의 성공은 조상 덕도 크다. 유교와 과거제도가 물려준 치열한 교육열이 인재강국을 만들었고,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 힘을 보탰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갑자기 독립한 신생국가와는 태생이 다르다.

민주화와 산업화의 뿌리도 매우 깊다. 조선 후기 실학에서 대한제국을 거치면서 근대화를 추구한 경험과 축적이 만만치 않았다. 대한민국의 국호가 왜 대한제국의 국호와 같은가. 3국의 영토를 합친 대국을 건설한다는 꿈이 ‘대한’에 담겨 있다. 또 대한제국도 목표는 ‘민국’건설에 두었다. 그래서 1897년 대한제국,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948년 대한민국은 근대화라는 큰 목표 아래 단계적으로 나라를 격상시켜 온 연속된 역사다.

다만 법적인 계승관계를 따질 때에는 그 사이 단절도 없지 않다. ‘제국’에서 ‘공화국’으로의 단절이 있고, ‘국가의 실체가 없는 공화국’에서 ‘국가의 실체를 가진 공화국’으로의 단절이 또 있다. 특히 1948년의 ‘대한’은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구성되었고, 임정 핵심 요인이 공식적으로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임정의 법적 계승이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건국 60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일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일류 선진국은 강하고 아름다운 나라라고 할 때 분단을 극복하는 것과 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아마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 철학의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편가르기를 떠나 위대한 국민 전체의 힘과 지혜를 다시 모으는 일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우리는 무서운 교육열과 인재강국의 오랜 역사가 있지 않은가. 그 저력을 묶어 세워 중흥의 역사로 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이제부터 정부와 각계각층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한영우 이화여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