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적반하장의 북한 군부 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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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달 11일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에 대해 침묵하던 북한 군부가 어제 금강산 지역 군부대 대변인 명의로 담화를 발표했다. 북한군은 정당한 행위를 했을 뿐이고, 북측 입장에서 필요한 조치는 다 했으니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아가 불필요한 남측 인원 추방, 출입 인원과 차량의 엄격한 통제, 사소한 적대행위에 대해서도 강한 군사적 대응 등 금강산 지역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50대 비무장 관광객이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과연 북한군 입장에서 사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느냐는 점이다. 북한군 통제지역에 들어간 것은 잘못이지만 남측 관광객, 그것도 여성인 줄 뻔히 알면서 등 뒤에서 조준사격한 것은 과잉대응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지난주 정부 합동조사반은 숨진 박왕자씨가 정지 상태 또는 천천히 걷고 있던 중 100m 이내의 거리에서 피격됐고, 사고 시간이면 70m 거리에서 남녀의 식별이 가능했다는 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담화에서 밝힌 북측 주장은 전혀 다르다. 날이 채 밝지 않은 이른 새벽의 시계(視界)상 제한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식별할 수 없었고, 여러 차례 서라고 요구했는데도 불응하고 달아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설명과 판단이 다른 만큼 현장 합동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논의하자는 남측 요구는 누가 보더라도 상식적이고 정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북측은 이를 거부한 채 숨진 박씨를 현지에서 직접 확인한 현대아산 직원에게 넘겨준 것으로 자기들 할 일은 다했다며 되레 금강산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오니 우리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 군부가 아무리 강경한 입장을 보이더라도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 책무가 걸린 문제인 만큼 이 사건에 대한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일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다만 금강산 사건을 구실로 남북 관계 추가 경색의 책임을 북한이 남측에 전가하고 있는 만큼 다른 차원에서의 대화 노력은 계속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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