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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기행>전남화순 운주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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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알려진 전남화순군도암면대초리와 용강리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운주사(雲住寺)는 80년대 들어 갑자기 유명해진 사찰이다.
황석영의 장편소설『장길산』에서 역성혁명을 꾀하는 역모의 땅으로,이재운의『소설토정비결』에서는 황진이의 미모에 무너졌다는 지족선사가 천불천탑을 깎는 도량으로 각기 이 사찰이 등장한다.더욱이 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에는 마치「민중불교 」의 성지처럼 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이것은 천불천탑의 집단적이면서도 토속적인 단순미가 민중성의 전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 사찰이 고려때 토호들이 세운 절로 밝혀짐으로써 조선시대 『장길산』의 무대나 16세기 지족선사의 등장은작가적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됐다.
운주사가 자리한 지역은 무등산의 한 줄기로 해발 1백여의 야트막한 야산이다.
두 산등성이와 계곡에 1백여분의 돌부처와 30여기의 석탑이 여기저기 널려있다.돌부처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한결같이 못생겨서 부처의 위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눈.코.입은 물론신체 비례도 제대로 맞지 않으며 정통 불상이 지 닌 도상에서 크게 어긋나는 파격적 형식미를 띤다.
석탑도 마찬가지다.어쨌든 이것들이 파격미.단순미.토속미.해학미등을 지니며 흩어져 있으면서도 집단적으로 배치된 점이 운주사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운주사의 불상들은 한무더기씩 무리를 지어 암벽에 기대기도 하고,돌집에 들어앉기도 하며,암벽에 새긴 마애불도 있다.
또 정상에 나란히 누워있는 석불 좌상과 입상을 새긴 뒤 미처일으켜 세우지 못한 미완성의 와불(臥佛)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운주사의 표기는 한때 「運舟寺」로도 쓰였는데 이는 풍수지리사상에 입각한 행주론(行舟論),곧 한반도를 배 형국으로 보고 운세가 일본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막고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풍수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 공사를 진두지휘했다고 전해져오는 공사바위는 대웅전 뒤켠에 있다.
이곳에서는 운주사 불적과 일대의 풍경을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있다.아직 봄꽃이 피기에는 이르지만 남녘의 봄빛을 완연히 느낄수 있어 상춘객들로 하여금 춘흥에 젖게 한다.
운주사의 석탑은 좌우 산허리에 각1열,계곡 평지에 1열로 모두 3열을 이루며 우뚝 서있다.정형에서 벗어난 연화탑과 오가리탑은 이국적인 정취마저 풍긴다.
더욱이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얹어 만든 동냥치탑이나 거지탑,실패꾸리 모양의 석탑은 마치 현대미술을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대단한 착상의 작품들이다.
운주사 경내를 돌아보면 인간의 소망을 느껴볼 수 있다.아들을얻기 위해 돌부처를 세우기도 하고 그 돌부처의 코를 떼어가 갈아먹기도 했다고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상처받은 민중의 염원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한 인간의 사랑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운주사다.
광주에서 화순.능주를 거쳐 가는 길과 나주 남평에서 도면을 거쳐 가는 길이 있다.
광주 학운동버스정류장에서 화순.능주를 거쳐 운주사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40분 간격으로 있다.돌아오는 길에 인근 도곡온천(0612-73-3033)에 들러 여독을 푸는 것도 좋을 듯싶다.화순의 자랑인 추어탕도 식도락가의 입맛을 당긴다 .
이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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