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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BOOK] “엄마,아빠! 싸우면 우린 어떡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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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노란 기사의 비밀
루돌프 헤르푸르트너 지음, 김경연 옮김
조승연 그림, 창비, 256쪽, 9000원, 초등 4학년 이상

 “그럴 줄 알았어! 당신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무책임한 당신은 어떻고!”

엄마와 아빠는 얼굴만 맞대면 이렇게 으르렁댔다. 부모가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동안 혼자 골방에 틀어박힌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귀를 막고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엔 절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왜 내 생각은 안 해주는 걸까.”

이 책은 부모의 이혼으로 슬픔에 빠진 소녀 파울리네와 유괴를 당해 피자성에 갇혀 사는 소년 로렌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의 마음 속 움직임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섬세하면서 날카로운 추리 형식으로 묘사된다. 평범한 소녀 파울리네가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엄마와 아빠가 행복하게 같이 있어주는 게 전부다. 아빠와 함께라면 코코아와 질척질척한 빵으로 아침을 때우는 고달픈 여행도 ‘멋진 소풍’이 된다.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행만 다니는 아빠는 집을 비웠고,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렀다. 엄마는 늘 목소리가 높다. 파울리네는 아빠에게 언제 여행의 열병이 덮쳐올지 불안했다. 사하라 사막에서 낙타를 타거나 몽골 초원에서 말 타던 일을 신나게 떠들 때면 더욱 그랬다. 엄마·아빠와 늘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어린 소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잠 못 이루던 어느 밤, 파울리네는 집 맞은 편 문 닫은 피자 가게 ‘피자성’ 앞에 멈춰선 자동차를 보게 된다. 노란 가로등 불 속에서 한 남자아이가 발버둥치며 성안으로 끌려간다. ‘혹시 유괴사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던 파울리네는 그 뒤 성의 탑 창문에서 던져진 종이비행기를 보고 로렌쪼라는 아이가 그 안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피자성 앞에 로렌쪼를 데려온 이가 다름 아닌 아빠라는 사실이다. ‘그럼 아빠가 유괴범이었던 거야?’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 때쯤, 파울리네는 학예회 때 쓸 운동화가 피자성 안으로 떨어지자 용기를 내서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로렌쪼와 처음 마주하게 된다.

자폐증상이 있는 로렌쪼는 자신을 ‘어린 영주’라고 소개하며 장난감 기사 군대가 어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는다. 파울리네는 힘겨운 자신의 현실도 잊은 채 불쌍한 소년을 구하기로 마음먹는다. 파울리네가 고사리 손으로 만든 노란 기사 인형만이 아동정신병동으로 옮겨진 로렌쪼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작가는 이 작품의 결말에서 ‘행복’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골이 이미 깊어진 부부 관계를 되돌리기란 쉽지 않으니까. 현실 속 우리들의 엄마·아빠는 동화책과 달리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살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남겨진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씁쓸한 현실이 가슴 한 켠을 울린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들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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