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A씨는 술을 마신 뒤 C를 불러냈다. A씨는 C에게 “너 보는 앞에서 죽을 테니 평생 후회하며 살아라”고 했다. 여자친구는 처음엔 말리다가 “맘대로 하라”며 기다리고 있던 B씨의 승용차에 탔다.
A씨는 “(C가) 내리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다”며 승용차를 가로막았다. 그러자 B씨는 “죽는 게 그렇게 쉬우냐. 죽을 테면 죽어 봐”라며 차창 밖으로 라이터를 던졌다. 30초 정도 머뭇거리던 A씨는 휘발유를 끼얹고 몸에 불을 붙였다. 그는 심한 화상을 입고 그해 12월 숨졌다.
이후 B씨는 자살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뒤 법정구속했다. “최소한 도의적 책임이 있음에도 반성하는 모습이 없다”는 게 실형 선고 이유였다.
하지만 서울고법 형사11부는 “B씨가 A씨의 자살 의사를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자살방조죄가 성립하려면 자살의 결의, 자살행위, 이를 피고인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A씨가 휘발유를 몸에 뿌린 것은 실제 자살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옛 여자친구를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한 행위”라며 “B씨가 라이터를 준 것도 역설적으로 A씨가 실제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