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 펴낸 황석영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매일 오전 10시 30분. 게시판에 ‘뉴’(new)가 반짝이면 사람들이 ‘별광장’으로 몰려들었다. 네티즌들은 소설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때로 격렬하게 토론하기도 했다. 한국문학의 대표작가, 황석영(65)의 블로그에서다.

황석영이 『개밥바라기별』을 블로그에 연재하는 동안 무려 180만여 명이 그 곳을 다녀갔다. 올 2월 연재를 시작해 촛불이 쉬이 꺼지지 않던 때를 지나 장장 5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작가는 매일매일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연재된 글을 엮어 단행본(문학동네)으로 펴냈다. 현대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중진작가가 인터넷에 먼저 작품을 쓰고, 이를 다시 책으로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가벼운 잡담’이 오고 가는 인터넷도 본격 문학공간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사실 예순이 넘은 작가가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한다는 것부터가 파격이었다. 작가 자신도 “처음에 네이버에서 연재를 하자고 했을 때엔 망설였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가능할까’라는 우려는 연재를 하며 기우로 드러났다. 한 번에 댓글이 150~200여 개가 달렸다. 네티즌들은 덧글란을 ‘별광장’이라 이름 붙이고 스스로 질서를 지키며 소통을 했다. 초창기에는 악플도 있었지만 점점 줄어들었다.

‘별광장’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담을 나누고 일상을 속삭이며 준이(주인공)를 따라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댓글이 소설 창작에 억압이 되지는 않았을까. 작가는 “마당극의 추임새 같은 격려였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10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연재되는 동안 10대들이 거리로 나왔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동안에도 소설은 계속 쓰여졌다. 작가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현실광장으로 나가자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인’을 지켜내자는 이들의 독립성은 지켜졌다. 아마 이 소설이 ‘개인의 내밀함’을 다루었기 때문일 거다. 오히려 사회적 억압이 함께하며 작품을 썼기 때문에 유준(주인공)의 내밀함을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다.”

『개밥바라기별』은 황석영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감기약 먹고 자다 깨다 하는 그런 나날’들 같은 사춘기. ‘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달았다’라며 풀어낸 이야기다. 『손님』 『바리데기』 등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맥락을 달리한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는 성장소설이라는 장르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개인의 내면적 성장에 관심이 덜했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급박한 성장을 거듭하며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았던 개인의 상처와 내밀함, 사랑을 들여다 봐야 할 때입니다.”

이번 작품으로 황씨는 젊은 네티즌에게 바짝 다가갔다. 영원한 청년작가 황석영은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나는 작품을 3분의1 정도 쓸 때면 이미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다음 번엔 ‘강남형성사’를 쓰고 싶다. 보다 자유롭게, 보다 인터넷적으로.”

하루 중 가장 고즈넉한 때, 개밥바라기별(금성)이 뜨면 시간은 쓸쓸해진다. 그 시간은 우리 모두가 겪어낸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한다.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롭다’고. 그러니 결론은 이렇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임주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