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베이징대 한국어학과 황종원 교수 “고3처럼 공부하는 중국 대학생에 자극받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황종원(38·사진) 중국 베이징대학 한국어학과 교수는 지난 학기 1학년 수업을 하는 날이면 제대로 점심을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오전 10시부터 2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어느덧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질문공세를 받았기 때문이다. 앞다퉈 한국어 발음이며 문법에 대한 질문을 퍼붓는 학생들에게 답을 해주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던 것이다.

“중국 학생들이 점심 먹으러 갈 생각을 안 해요. 몇 번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학기 내내 그러더군요. 숙제로 간단하게 문장 몇 가지를 만들어오라고 하면 두 페이지 넘게 장문의 글을 만들어오기도 하더군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합니다.”

이런 학생들의 열정에 반한 그는 지도에 더욱 정성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4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대학 한국어학과의 부교수로 임용됐다. 이 대학이 정식 교수로 임용한 한국인은 그를 포함해 세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9명의 교수가 일하는 한국어학과에선 그가 처음이다.

방학을 맞아 ‘한·중·일 종교 포럼 창립대회’에 참석하고 원불교 교전 중국어 번역 작업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그는 성균관대에서 유학을 공부한 뒤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유학의 발원지에서 공부하고픈 마음에서다. 중국 유학 1세대인 그는 베이징대학에서 중국 철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대학 부설 종교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초빙교수로 3년간 일하다 이번에 정식으로 임용됐다. 학부생들에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대학원생들에겐 한국 종교를 가르쳐왔다.

그는 특히 중국학생들이 공부에 대해 보이는 열의를 누차 강조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대학생들이 마치 우리나라 고3 학생들처럼 쉬지 않고 공부해요. 나중에 중국의 정·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명문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경쟁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자극을 받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교수들과 토론하고, 교수들도 양복이 아닌 편한 복장으로 학생들과 부대끼는 실용적인 분위기도 배울만하다고 덧붙였다.

황 교수는 “93년 중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껴왔다”며 “중국 학생들이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도 아무래도 한류의 영향이 크다”라고 말했다. “한류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와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중국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의 꿈은 중국에서 한국학이 자리를 잡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한국학은 아직 출발선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열의에서 보듯이 한국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상당합니다. 한국학이 세계에서 제대로 된 위치에 오르려면 중국과 같은 중요한 토양에 뿌리를 내려야지요.” 그는 “한국과 관련한 자료가 태부족이어서 박사과정 학생들의 경우 논문 작성에 애로가 많다”며 “한국의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과 중국 학계가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협정을 맺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그를 비롯한 한국어학과 관계자들은 학과가 ‘한국학부’로 독립,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갖고 있다. 9월에 시작하는 다음 학기부터는 비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강의도 처음 개설될 예정이다. “중국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아름답다며 열심히 배우는 모습을 보면 너무 뿌듯하죠. 이제 정식 임용도 되었으니 더욱 노력해 한·중 교류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최민규 인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