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권력 견제장치가 약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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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자면 『칼국수를 먹는 등 청교도적 절제와 극기(克己)의 생활을 해왔다』고 말했다.그럼에도 대통령의 의지와 노력과는 달리 적지 않은 국민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어느 여론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60%를 넘기도 했다.
이런 국민의 반응이 나올 때마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혀를 차며 개탄하곤 했다.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감이 너무 심하다는것이었다.그런 개탄과 불만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장학로(張學魯)사건을 보면 국민이 너무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오히려 국민의 감(感)이 너무나 정확했던 것이아닌가.이는 물론 金대통령이 스스로의 약속을 어겼다는 말은 아니다. 이번 사건도 金대통령과는 아무런 직접적 관련이 없다.그러나 金대통령이 그동안 그렇게 여러차례 「한푼도 안 받았음」을강조했음에도 많은 국민들이 끝내 그것을 믿지 않았던 것은 대통령 주위에서 이번 경우와 같은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 金대통령은 대단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런 심경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자신이 칼국수를 먹으며 금욕하기만 하면 주변이나계파 사람,더 나아가 신한국당 전체 사람이나 고 위 공직자들도「청교도적 절제와 극기의 생활」을 하리라고 믿었단 말인가.
어제 날짜 중앙일보 「왈순아지매」는 30년간 굶주리며 아스팔트 위를 뛰던,마른 스펀지같은 사람들이 집권하면 「물먹은 하마가 되는 모양」이라고 이죽거렸다.「마른 스펀지」가 「물먹는 하마」가 되기 쉬운 이치를 정녕 몰랐다면 너무 순진 하거나 생각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권력의 정상에 있는 대통령의 청렴 의지와 솔선수범이 부정부패방지의 필수조건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그런 점에서 金대통령의 의지와 그동안의 실천 그 자체는 높이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선 각자의 도덕적 각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또 그것이 문제해결의 궁극적 열쇠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전쟁과 압축성장,오랜 권위주의 정치로 인해 합리적.도덕적 시민문화가 정립되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의 도덕적 각성에 문제해결을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것과 같다.
청렴과 공정을 강제하고 도덕적 일탈을 감시할 장치와 제도가 필요하다.철인(哲人)이나 성인군자가 아닌 범상한 사람이라도 권력을 쥘 수 있는 것이 현대 민주정치의 장점이긴 하지만 그것은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범상한 사람들에게 너무도 큰 권력이 주어져 오용(誤用)이나 남용을 빚기도 쉬운 것이다.따라서 실수를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할 그물망이 촘촘히 짜여져 있어야 한다.그래야 비로소 민주정치는 공정하고 효율적으로작동한다.
그러나 「장학로사건」을 겪고도 침통해하기만 했지 그런 견제와감시의 그물망을 새로이 짤 생각은 안하고 있다.따지고 보면 우리에게도 권력의 남용이나 오용.독주를 막을 장치와 제도가 전혀없는 것은 아니다.이를테면 금융실명제나 공직자 윤리법 등이 그런 것에 속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듯 금융실명제는 부정직한 사람들에게는아무런 견제역할도 할 수 없었다.남의 이름을 빌려 얼마든지 검은 돈을 주고 받고 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공직자윤리법도 마찬가지다.최근의 재산등록과 변경신고에서도 나타 났듯 당사자의선의와 정직에 기대하는 것이 고작인 형편이다.
우선 기왕의 이런 법부터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게 하면서 정보공개법.행정절차공개법과 같은 견제와 감시의 수단도 서둘러 마련해 권력의 컴컴한 구석을 가능한한 줄여나가야 한다.최근 제안되고 있는 인사청문회의 확대나 내부고발자보호법의 제정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권력의 견제와 통제를 가능케 하고 투명성을 보장해줄 장치와 제도가 너무나 미약하다.이는 이번사건처럼 권력이 제무덤을 파는결과를 낳기가 십상이다.
이제는 권력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할 그물망짜기에 나서야 할 때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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