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부패선거 폐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병원마다 머리가 터진 사람,의식불명 상태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사람,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입술이 찢긴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다.』사라예보의 참상이나 교통사고 전문병원의 실상을 보고한내용이 아니다.1827년 영국에서 있었던 부패선거의 단면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실 보도중 하나다.얼마나 금품수수와 선심 향응이 횡행했던지 선거술을 얻어먹고 싸움박질하거나 술기운을못이겨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로 병원이 가득찰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패선거를 이기고 영국은 이제 의회민주주의의모범국으로 변모해 우리의 부러움을 한몸에 사고 있다.1883년제정된 「부패 및 부정행위 방지법」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를 보고 부패선거에 시달려온 우리가 힘겹게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 소위 통합선거법이다.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영국이 「영국병」을 고치는데 효험을 발휘했다는 부정선거척결법이 우리가 「한국병」을 치유하는 데는 도무지 별무효과다.공식 선거철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10억원을 쓰면 낙선이고 20억원은 써야안심』이라는 소리가 인구에 회자(膾炙)했다.하기는 대갓집 마당쇠가 1천만원짜리 수표쯤은 쓰레기통에 굴린다는 세상이니 그럴 법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거가 금권선거로 얼룩질 때 그 결과가 어떤 것이냐에대해서는 사실 우리나라 백성만큼 고액 과외공부를 많이 해놓고 있는 경우도 쉽지 않다.5,6공의 비리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부패선거가 공모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그 리고 그 비리의 주범인 전직 대통령 두사람에 대한 재판이 아직 진행중임에도불구하고 우리는 도무지 이 망국의 수치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으려는 노력이 없다.
정치를 부패시키는 것만이 부패선거의 폐해가 아니다.그 많은 돈을 쓰고 선거가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통해 얻고자 하는 정치적 효과가 전혀 생겨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선거과정이 왜곡됐으니 우리사회가 현재 안고 있 는 사회정책적 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무엇이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인지 계량할 수 없게 된다.이번 선거를 두고 집권세력에 대한 중간평가라고도 하지만 선거과정이 부패하고서야 어디 평가 결과의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선거과정을 통해 분출돼야 할 정치적 불만이나 갈등이 사상(捨象)되거나 외면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만큼 선거로 인한 정치적결속의 강화나 사회적 통합의 증대는 꿈도 꾸어보기 어렵게 된다.정치적 냉소주의와 정치권력에 대한 불신이 증폭 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더욱이 불법이 판치는 가운데 당선된 정치 지도자에 대한 신뢰부족이나 권위의 부인이 일상화할 것은 물론이다.
정치적 질서가 한달음에 무너지는 셈이다.
따라서 선거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공정하게 치러져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첫 발자국을 내딛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과정이 개혁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이미사전선거운동으로 열기를 더한 선거전이 이제 공식 적으로 출범하게 됐다.이번 선거에 의해 구성되는 15대 국회는 임기가 2000년에 끝난다.21세기를 준비하는 과제가 15대 국회에 부여돼 있는 셈이다.이미 붕괴과정에 들어섰다는 북한과의 통일문제도현재의 진행 속도대로라면 15대 국 회 임기내에 가시화(可視化)할 가능성이 커졌다.통일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과제를해결해 나가야 할 국회가 바로 이번 선거에 의해 구성된다는 의미다.그 어느 때보다 이번 선거의 과정과 결과에 유의하지 않을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면 그 다음부터의선거는 보다 더 수월하게 정상화된다는 것이 영국에서의 경험이었다.아무쪼록 이번 선거가 그 단 한번의 선거가 되기를 기대하는마음 크다.
朴載昌 숙대교수.의회행정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