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외논조>脫北者 한국정착 대책 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금세기중 남.북한이 통일될 것이라는 낙관론은 점차 수그러들고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 정권이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조종 불능의 비행기와 같다고 보고 있으며 북한의 「연착륙」에 대한 기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독일식 흡수통일이 아닌 상호합의에 의한 점진적 통일이라는 기본 입장도 다소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논의에서 독일처럼 옛 소유권의 원상회복과 즉각적인 화폐통합 조치는 없을 것이다.
경제분야의 통일논의는 서서히 진행될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통일과정에서 북한의 폐쇄적 경제상황이 정치.군사적 분계선과 같이 엄격하게 유지되도록 할 것이 뻔한데 아직은이에대한 분명한 입장이 나오지 않고있다.
한반도 통일에 장애가 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지난 달 일어났다.중국.태국.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 북한 벌목공 김형덕이 울산항에서 중국 배를 타고 재월북을 시도하다가 붙잡혔다.한국인들은 그동안 월남 귀순자라면 공산당 간부.장교 .외교관.김일성 일가 친척등 북한 상층부 인물을 주로 떠올렸다.그러나 요즘엔 북한 하층민의 탈북이 부쩍 늘고 있다.김형덕과 같이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탈출한 수백명의 북한 벌목공들이 이미 한국에 망명해 살고있고 그 수는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김형덕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통일의 인간적 측면에 대해 실질적 논의가 시작됐다.지난 92년 이전만 해도 북한 귀순자에대해 관대한 정착 지원법이 있었다.귀순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 이들에 대한 지원이 급격히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 히 주택임대료.정착보조금등이 지원되고 직업도 알선된다.이 와중에 북한 하층부의 귀순자들이 한국의 사회적 현실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한국내 일부 기업주들은 고용한 귀순자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자 보상금을 주면서까지 내쫓고 있다.그동안 교류가 없었던 까닭으로 언어 소통에도 문제가 많은데 무능자로 취급당하니 귀순자들이 설 땅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독일에서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 이전 김형덕과 같은 나이에 서독으로 귀순한 동독 청소년들 의 3분의1이 다시 동독으로 넘어간 일이 있었다.이때 동독 정부는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오히려 서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의 공짜 여행을 제공,동독 청소년들을 서독으로 유인했다고 서독 정부를 비난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이제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
정부차원에서는 북한에서 온 젊은이들을 위해 직업교육이나 한국사회 정착을 위한 대책에 미흡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귀순자 문제를 전담하는 별도의 기관이 없는 것도 비난의대상이다.의지할 곳 없는 귀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고를 가톨릭등종교 단체에 호소하고 있다.어쨌든 김형덕 사건은 한국 정부나 국민들에게 통일이 정치.경제.지정학적 차원을 넘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중대사안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정리=한경환 베를린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