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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의 인간 견문록] 미래 직업의 조건, 돈보다 낭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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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인류 최초의 직업이 매춘이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는 가운데 요즘 인터넷에는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닌다. 미국 헌법 제정에 참여했던 벤저민 프랭클린, 벤저민 러시, 토머스 제퍼슨이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역사상 최초의 직업이 무엇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의사인 러시는 “외과 수술이 없었다면 아담의 갈비뼈를 꺼내 이브를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게 아닌가”라며 의사야말로 사상 최초의 직업이라고 했다. 그러자 몬티첼로 별장을 지은 제퍼슨이 “아니지. 건축가가 없었다면 이 세계를 무질서에서 구해 내지 못했을 걸세”라고 대꾸했다. 이에 가만히 듣고 있던 프랭클린이 대답했다. “자네 둘 다 틀렸네. 인류 최초의 직업은 정치가라네. 그 무질서를 만든 게 누구였겠나.”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과연 어떤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일까? 대부분의 제조업 부문 일자리는 이른바 ‘3D’라는 불명예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넘겨진 지 오래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자리란 본래 시장의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수명도 한시적이고 매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한때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이려 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만들어 낼 일자리는 대부분 토건 현장의 한시적인 일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일자리는 아무리 많이 만들어져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젊은이들이 별 생각 없이 투표에 임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내게 상당한 실망을 안겨 준다.

요즘 대학생들은 입학하는 순간부터 오로지 취업 걱정뿐이다.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나는 철이 없어 그랬는지 모르지만 졸업반이 돼서야 비로소 취직 걱정을 시작했었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더넘스러웠던 친구들도 대학 1학년 때부터 모든 과목을 취직 준비용으로 결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 우리에게는 그래도 낭만이란 게 있었다고 얘기하면 분명 힐난을 면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요사이 대학 캠퍼스에 서면 자꾸 숨이 턱턱 막힌다. 낭만을 담보로 번번이 실용을 움켜쥐는 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요즘 대학생들이 직업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적 전망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과연 어느 수준의 경제적 미래를 꿈꾸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막연히 거의 재벌 수준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경제적 수준, 일에 대한 만족도, 행복의 기준 등에 관해 아주 구체적이고 다분히 정량적인 분석을 해 보기 바란다. 단순히 엄청난 양의 부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벌며 진정 행복한 삶을 원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

나는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할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미래 직장에 관해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 보인다. 현재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직장을 얻어 활동하게 될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10년 내지 20년 후일 것이다. 줄잡아 2020년 또는 2025년께일 텐데 그때가 되면 우리 국민소득이 지금보다는 상당히 올라 있지 않을까 싶다. 2만5000달러? 3만 달러? 국민소득이 그쯤 돼도 과연 지금처럼 서울시내 한복판 고층 건물로 출근해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직장이 가장 좋은 직장일까? 그때가 돼도 매일같이 환자나 범죄자를 상대하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일까?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직장은 어떤가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아담한 어느 지방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됐다고 상상해 보라. 아침에는 딸을 자전거 뒷자리에 태운 채 숲길을 따라 출근한다. 하루살이 표본을 정리하다 말고 창문을 열어 내려다보면 딸은 바로 박물관 옆 보육원 잔디밭에서 뛰놀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걸어오는 아내와 마주친다. 비록 월급이 조금 적다 해도 매연 가득한 대도시의 대기업에 다니는 것보다 이런 직장이 훨씬 더 좋아 보일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만일 그런 직업에 이미 발을 들여놓았다면 당신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최재천 교수 이화여대·에코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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