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沐후而冠-갓쓴 원숭이 사람행세를 못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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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홍문연(鴻門宴)을 통해 유방(劉邦)으로부터 진(秦)의 도읍 함양(咸陽,일명 關中)을 손에 넣은 항우(項羽)는 살인.약탈.
방화를 자행해 민심이 등지게 하고 말았다.이 점은 유방이 예견한 터였다.항우는 스스로 황폐하게 한 함양이 마음 에 들지 않아 고향인 팽성(彭城)으로의 천도(遷都)를 결심했다 (95년12월12일자「錦衣還鄕」참고).함양이라면 천혜의 요새로 예부터 패업(覇業)의 땅이었다.간의대부(諫議大夫)한생(韓生)이 수차 간했지만 항우는 화를 내면서 그를 멀리했다.한생은 탄식하고 물러 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원숭이를 목욕시켜 관을 씌운 꼴이군(沐후而冠).』아뿔싸!이 말을 항우가 듣고 말았다.무식했던 그는 무슨 뜻인지 몰라 진평(陳平)에게 물었다.『폐하를 흉보는 말인데 세 가지 뜻이 있지요.원숭이는 관을 써도 사람이 못된다는 것,원숭이는 꾸준하지 못해 관을 쓰고 조바심을 낸다는것,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거리다 의관을 찢어버리고 만다는 뜻입니다.』격분한 항우는 그를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 삶아 죽이고 말았다.죽을 때 한생이 말했다.『두고 보아라.
유방이 너를 멸하리라.역시 초(楚)나라 사람들은 원숭이와 같아관을 씌워도 소용이 없지.』결국 항우는 함양뿐만 아니라 천하를몽땅 유방에게 빼앗기고 말았다.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추었다고다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은 아니다.沐후而冠과 같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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