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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영역 일 번지’ 세종로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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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비 내리는 주말, 세종로에 나섰다. 광장 공사가 한창이다. 오래전 학생들과 함께한 작업에서 이 거리의 이름을 ‘공공영역 일 번지’라 부른 일이 있었다. 월드컵이 거리를 깨운 때였고 동시에 이 거리의 성격을 논의하기 시작하던 그때였다. 작업에 앞서 내세운 몇 가지 전제가 있었다. 시민사회의 형성이라는 우리 사회의 지향점과 시민사회를 위한 공공영역의 확보라는 우리 도시의 목표가 우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공영역들 사이에 좋은 네트워크가 이뤄져야 하며 그러한 네트워크의 중요한 거점이 바로 이곳 세종로일 수 있다는 그런 전제였다. 여러 해가 지난 지금 이곳에 많은 변화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들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뭔가 중요한 논의를 비켜가고 있는 듯하다.

시민사회의 발달이 국가 형성을 이끌었던 저들 사회와 달리 우리는 그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이 도시 풍경의 서로 다름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특히 도시를 함께 만들고 유지해가는 공공의 윤리에서 더욱 뚜렷이 보인다. 사회계약으로 얻어진 자유와 평등일지라도 그것이 지켜지기 위해 공공의 윤리가 작동된 그들의 도시가 있고, 계약이 무르익기도 전 국가가 이끄는 근대화 속에서 양적인 팽창으로만 내달렸던, 그래서 그러한 윤리는 미처 꺼내볼 틈도 없었던 우리의 도시가 있다. 정돈과 혼돈의 간격만큼 결과의 차이는 크다. 눈에 보이는 풍경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공공’에 대한 인식의 차이며 그것은 공공영역이 가진 질과 양의 차이로 이어진다.

공공영역이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며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을 담아내는 공간이라 말한다. 그러나 하버마스에 따르면 역사적 의미의 공공영역은 근대의 시민들이 스스로 비판적·반성적 토론을 거치며 서로의 간극을 조율해온 특별한 사회영역이었다. 그에게 공공영역은 사적 영역과 구분되는 영역인 동시에 체제와 제도가 가하는 통제로부터도 자유로운 매개영역이었다. 서로를 소통시키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이 그 영역에 있다는 그의 말이 때로 너무나 개인화되고 때로 너무나 집단화된 오늘의 상황 속에서 더욱 주목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 관점에서 시청 광장, 청계천과 같은 우리의 열린 공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이 도시에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는 일명 댄스 스퀘어라 부르는 샤우부르크 광장이 있다. 광장의 설계자 아드리안 괴즈는 눈에 보이는 경관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도시의 삶과 함께 진화한다고 믿는다. 광장은 붉은색의 커다란 조명탑 네 개만 눈에 들어올 뿐 그저 텅 빈 공간이다. 하지만 광장에 들어서 보면 나무와 대리석, 철판과 에폭시 수지 등 다양한 바닥판을 만나게 된다. 이것들은 이곳에 담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에 대한 예측과 정교한 계산의 결과다. 예기치 않은 공연판이 벌어질 수 있고 여름날 숨겨진 분수가 치솟기도 하며 때로는 장이 설 수도 있다. 수많은 잠재력을 그 안에 예비해 놓고 다양하고 새로운 관계와 소통을 계속 불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현대도시의 공공영역이다.

세종로가 가진 역사의 깊이와 의미들은 공공영역이 되는 길에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우선 검토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너무 많은 요소들이다. 동상과 분수, 미디어 판, ‘육조회랑’ 등등 요소들이 넘친다. 그것들은 다양해야 할 활동들을 자꾸만 규정하려 하고 새로운 관계와 소통을 방해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생각의 범위다. 계획은 지금 길의 범위에 한정되어 있다. 길에 면한 시설들, 시설들 사이의 영역, 그리고 그곳을 통해 연결되는 그 너머 영역들이 이곳과 연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영역들과 이루는 네트워크는 도시 공간 속으로 더 많은 공공영역의 확산을 자극할 수 있다. 지금 세종로에 공공영역 일 번지의 기회가 있다. 하지만 기회는 우리에게 ‘공공영역’에 대한 성찰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

이종호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약력=한양대 건축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스튜디오 메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