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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기행>"이민의 새물결" 샌포드 웅가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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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국을 인류의 용광로라 부르는 것은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살기때문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제하고는 콜럼버스 이후에 이주한 사람들의 후예로 이뤄진 것이 미국이다.미국은 한 마디로 이민의 나라다.
그러나 2차대전때까지 미국은 유럽인의 나라였다.1890년대 초까지 미국이민은 거의가 서북유럽 출신이었고,1896년 이후에야 남유럽과 동유럽 이민들이 대거 밀려들기 시작했다.
미국을 진정한 전 인류의 용광로로 만든 것은 2차대전 후에 시작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민의 물결이다.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등 전세계의 이민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그리고 이번 이민들은 종래처럼 미국의 기존문화에 적극 동화하지도 않는다.영어조차 쓰지 않으며 고국의 문화와 풍습을 그대로지키는 이민사회가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1980년대 이래의 경제침체 속에 새 이민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다.94년말 캘리포니아주 주민투표는 위헌 논란이 있는187호 법안을 통과시켰다.다른 여러 주가 불법체류자 보호를 거부하는 이 정책에 따를 추세를 보이고 있고,영 어를 새삼스레공용어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샌포드 웅가는 『이민의 새물결』(원제:Fresh Blood,Simon & Schuster刊)에서 이민의 포용이 곧 미국의본질적 요소임을 상기시키면서 근래의 이민배척 정책이 단견임을 지적한다.
본론부에서는 이민문제에 관련된 다양한 현상들을 예시해준다.불법 체류자 단속이 일으키는 사회문제들,이민집단들이 미국경제의 한 모퉁이씩을 성공적으로 담당하게 된 사례들,고유문화와 풍속을지키는 대규모 이민사회들,그리고 근년의 이민배척 분위기 확산등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저자의 관점을 목청돋워 내세우기보다 여러 측면을 넓게 살핌으로써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노력이다.
많은 사례를 통해 부각되는 한가지 사실은 20세기 후반의 이민은 미국의 국제정책으로 야기된 예가 많다는 것이다.월남전 당시 라오스에서 미중앙정보국(CIA)비밀작전에 협조하다 고향을 잃은 산악부족 몽(Hmong)족이 가장 기구한 팔 자다.산업사회에서 생활해본 경험이 없는 10여만 몽족 이민은 대부분 사회보장제도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가장 큰 몽족 이민사회가 미니애폴리스 지역에 형성된 것은 미네소타주의 사회보장이 가장 후하기 때문이라 한다.
본국 인구의 10%가 넘는 70만명이 살고 있는 플로리다의 쿠바인 사회도 흥미로운 경우다.쿠바인 대량 이주는 60년대 초미국과 카스트로 정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미국이 쿠바 엘리트층을 빨아들이는 방침을 세운 데서 시작됐다.그러나 카스트로는 미국의 희망처럼 금방 쓰러지지 않았고 쿠바인 사회는 미국 정치와사회에 큰 부담이 되었다.
미국과 쿠바간의 승강이에서 빚어진 기막힌 사태가 80년의 「마리엘 수송작전」이었다.쿠바인 수천명이 아바나의 각국 대사관에뛰어들어 망명을 요청하자 미국은 카스트로를 비난하며 이들에게 망명의 길을 열어주라고 촉구했다.그러자 카스트로 가 미친척하고망명의 개방을 선포해 마리엘 항에서 3개월간 쿠바의 「쓰레기」를 방출했다.이때 건너온 10여만명의 이민은 미국사회에 더욱 많은 문제를 초래했다.
비슷한 일이 94년 여름 또 일어났다.쿠바가 해안경비를 중지한 것이다.매달 몇만명씩 뗏목과 보트를 타고 플로리다로 흘러오자 당황한 클린턴 정부는 저자세로 협상,쿠바의 해안경비 회복 약속을 받았다.해상에서 나포한 2만여명을 쿠바에 송환하려다 곡절 끝에 입국을 허용했지만 장래의 망명자는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을 분명히 했다.쿠바 망명자 환영정책을 35년만에 포기한 것이다. 한인 이민사회가 여타 이민사회와 다른 특징은 이민의 대부분이 도시출신.고학력이라는 점이다.육체노동에 익숙지 않고 향상심이 크기 때문에 위험한 지역의 식품점과 주류점 등 소규모 자영업에 많이 진출했지만,사교성이 없고 자존심이 강해 지역사회에서 어울리지 못해 92년 LA폭동에서 표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폭동 뒤 한-흑 우호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어떤 흑인은 한인 점포주들이 무례하게 보였던 것이 악의가 아니었음을 비로소 이해했다고 한다.한국에서는 누구나 모든 사 람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보고.
저자가 한인 이민의 문제점에 대해 가장 폭넓은 설명을 들은 것은 LA에서 영문 주간지 코리아 타임스를 편집하는 이경원씨로부터다.이씨는 미국의 한인사회가 전통없이 단기간에 만들어진 점을 지적한다.70년대와 80년대에 집중적으로 미국 에 이주한 한인들에게는 이민생활의 모범이 될 선배도 없었고,다른 민족집단과의 관계를 조정할 제도적 장치도 없었다.이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리의 전사(戰士)로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이민을 통제하되 숫자를 대폭 현실화할 것,입국통제업무는 검역.범죄 등 실질적인 면에 집중할 것,이민국의 구조를 개혁하고 직원 자질을 높일 것,이민정책의 도덕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것,이민으로 인한 각 주의 부담을 연방정부가 보상할 것등 다섯 가지가 책 끝에 붙은 저자의 제안이다.
현재 미국 아메리칸대학의 언론대학 학장.워싱턴 포스트.뉴욕 타임스 매거진.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유수의 일간지 및 잡지에 이민관계 기사를 투고하고 있는 베테랑급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유대인으로서 이 책 집필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한 인타운을 비롯,쿠바인.폴란드인.인도인.베트남인.아이티인.아일랜드인 등 미국내 소수계의 집단 거주지를 두루 돌았다.이민 문호를 넓혀야 한다는 그의 논조는 미국 보수 정치지도자들에게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김기협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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