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카지노로 명예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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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불거진 ‘슬롯머신 사건’의 장본인 가운데 하나인 정덕일(61) 벨루가 엔터테인먼트 회장. 그가 모든 재산을 제주도에 쏟아 부었다. 제주도에 호텔, 메디컬센터, 쇼핑몰, 공연장, 카지노 등을 묶은 대규모 카지노 리조트를 짓기 위해서다. 다만 그가 늘 말하듯 인허가 규제 등으로 아직 때가 무르익진 않았다.


포브스코리아 국무총리실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는 6월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회의를 열었다. 이 위원회는 이날 특별자치도 3단계 제도 개선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이른바 ‘관광 3법(관광진흥법, 국제회의산업육성법, 관광진흥개발기금법)’의 정부 권한이 제주도지사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특별자치도 출범 이전부터 제주도에서 줄곧 요구해 온 법인세율 인하, 제주의 모든 지역 면세화, 관광객 전용 카지노 설립, 국내 영리법인 의료기관 설립 등의 사안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날 제주도 남동쪽 해안에 있는 수농원에서 만난 정덕일 벨루가 엔터테인먼트 회장은 “한편으로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라는 반응이었다. 참여정부 때 2단계까지 진행된 제주특별자치도 제도 개선 작업이 새 정부에서 좀 더 속도를 내나 했지만 오히려 알맹이가 빠졌다는 것이다.

정덕일 회장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불거진 ‘슬롯머신 사건’의 장본인인 정덕진 씨의 동생이다. 정씨 형제는 80년대 초부터 슬롯머신 사업에 뛰어들어 부를 쌓았고 권력 실세와 정·관·법조계에 로비를 펼쳐 물의를 빚었다.

이들의 로비 사실이 드러나면서 ‘6공화국의 황태자’로 통했던 박철언 전 장관이 구속됐고,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등 검찰 고위인사도 줄줄이 옷을 벗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정덕진 씨는 노환과 지병으로 투병 중이다.

90년대 중반 호텔 사업에 뛰어든 정덕일 회장은 몇 년 전 사업 방향을 틀었다. 제주도에 호텔, 메디컬센터, 쇼핑몰, 공연장, 카지노 등을 묶은 대규모 카지노 리조트를 지어 인생의 역작을 만들 계획이다. 리조트는 이르면 2011년에 문을 여는 일정으로 추진된다.

그는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제주도에 쏟아 부었다. 지금까지 서울과 수도권의 호텔 세 개를 팔아 1000억원가량의 자금을 마련했다. 2006년 3월에는 300억원을 들여 제주 신라호텔에 있던 콘티넨탈㈜의 카지노 라이선스를 사들였다.

카지노 라이선스를 따로 받을 수도 있지만 옛 사건 때문에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기 쉬워 아예 기존 카지노를 매입한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이 사업을 준비한 건 꽤 오래된 일입니다. 20년 전에 현재 샤인빌리조트의 박찬수 사장으로부터 국내 제1호 열대 관광농원인 수농원을 샀어요. 근처 땅도 조금씩 사들여 12만㎡ 규모의 카지노 리조트 부지를 마련했죠. 제주도 사람들은 대개 배타적인데, 내가 개발이익이나 챙겨서 서울로 돌아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는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마카오는 라스베이거스 못지않은 복합 엔터테인먼트 도시로 거듭나 훨훨 날고 있는데 제주도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합니다. 제주도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명예도 회복하고 싶습니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카지노 리조트는 샤인빌리조트, 해비치호텔, 해양 리조트 휘닉스아일랜드 등과 더불어 제주도 남동쪽 관광벨트의 한 축을 이룬다. 보고, 먹고, 즐기고, 쉬는 시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은 이를 십분 활용하면서 차별화 전략을 펼쳐 경쟁력을 극대화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는 “모두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강력한 경쟁 상대지만 이들에게 없는 카지노와 메디컬센터, 한류 문화 공연장으로 겨룬다면 해볼 만하다”고 자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전체 수입 가운데 카지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하다. 나머지는 컨벤션, 리조트,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벌어들인다. 미국 샌즈그룹이 지난해 8월에 마카오에 선보인 베네치안호텔에도 객실과 카지노만 있는 게 아니다.

대규모 전시장을 비롯한 연회 공간, 쇼핑몰, 식당가, 다목적 실내 경기·공연장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정 회장은 “지금은 카지노만으로는 사람을 모을 수 없다”며 “의료와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뜻에서 카지노 리조트 사업을 추진할 회사 이름을 벨루가 엔터테인먼트라고 지었다. 그러나 그로선 바로 이 대목에서 지난 6월 3일에 열린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 회의 결과가 아쉽다. 부자 고객을 모을 중심 축인 의료사업을 추진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성형, 치과 등 5개 분야의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메디컬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가톨릭대와 손잡은 바이오통합의학연구소는 이미 세웠다.

문제는 사람을 모을 마케팅이다. 메디컬센터를 지을 돈도 돈이지만 부자 손님이 많이 와야 직원 월급을 비롯한 운영 경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카지노 사업도 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 그가 제주 신라호텔에서 경영하고 있는 벨루가 카지노는 한 달에 3억~4억원가량 적자를 보고 있다. 제주도의 나머지 7개 카지노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평소 “중국 부자를 잡아야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정 회장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세계적인 카지노 개발·운영업체인 미국의 길만그룹과 손을 잡았다. 남서울호텔과 카지노제주를 인수한 길만그룹은 제주의 카지노 시장을 키우기 위해 정 회장과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9월부터 12월까지 길만 측이 홍콩 등 중국에서 ‘큰손’ 손님들을 끌어오고 수익을 나누기로 했다. 정 회장은 8월 말까지 카지노를 리노베이션 해 현재 일본식인 카지노 인테리어와 게임 룰, 시스템 등을 중국식으로 확 바꿀 계획이다.

정 회장은 “길만 같은 세계적인 회사가 들어와야 제주도 카지노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라스베이거스의 유력한 카지노 회사 간판이 있어야 중국 부자들이 믿고 크게 베팅한다는 것이다. 현재 제주 지역 카지노는 규모가 작아 큰 베팅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아시아 카지노 시장의 수요자가 대부분 한국·중국·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제주도의 미래는 밝아요.” 정 회장의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듯 세계적인 카지노 회사가 제주도에 슬슬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 버자야 그룹은 예래 휴양형 단지에 20억 달러를 투자해 카지노, 호텔, 의료 시설, 쇼핑 시설 등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과열을 우려한 마카오 당국이 4월 이후 새로운 카지노 라이선스를 내주지 않는 점도 호재다(버자야 그룹의 빈센트 탄 회장 기사는 102~104쪽에 자세히 실려 있다).

마카오 진출을 위해 시가의 6배를 주고 골프장을 산 씨저스는 정작 카지노를 세울 수 없는 황당한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카지노 ‘세븐럭’을 운영하는 한국관광공사 자회사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일 년 안에 민영화될 전망인 것도 제주도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랜드코리아레저엔 MGM 등 유수의 카지노 기업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그는 “특히 베이징올림픽이 끝나면 중국인의 해외여행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자연히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의 발길도 잦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가 늘 말하듯 아직 인허가 규제 등 때가 무르익지 않았지만 말이다.

제주=글 남승률 기자·사진 안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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