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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투쟁’ 힘 보탠 일본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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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823번째 수요집회가 23일 서울 안국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일본인으로 이뤄진 ‘극단 수요일’ 단원들이 ‘할머니는 우리들의 희망’이란 제목의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최민규 인턴기자]

“수요시위를 아십니까. 수요일이 되면 할머니들도 나가신다.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부터 쌓아 올리신 기나긴 길을 이제 우리 함께 걸어나가자.”

23일 정오 서울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푸른 천을 배경으로 11명의 일본인이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본에서 온 ‘극단 수요일’이다. 극단 수요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 온 오사카 시민단체다.

극단 수요일은 이날 823회 정기 수요시위에서 ‘할머니는 우리들의 희망’이라는 연극을 공연했다. 위안부 할머니 8명과 100여 명의 사람이 지켜봤다.

흰 저고리에 까만 한복 치마를 입은 두 일본인 단원이 나섰다. 1막의 시작이었다. ‘연수’와 ‘세나’ 역을 맡은 두 단원은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어려움에 대해 호소했다. 어눌한 한국말이었다. 11명의 단원은 한국어를 모르지만 이날 공연을 위해 한국어를 통째로 외웠다고 한다. 이어 다나카 히로미(61)의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고베 조선고등학교 무용부 학생인 연수와 세나는 다카라즈카시 주최 50주년 기념 이벤트장에서 조선무용을 춘 뒤 일본인 여성에게서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폭언을 들었어요. 이후 민족 차별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길원옥·이연수·이옥순 위안부 할머니로 분장한 세 명의 단원이 각각 나섰다.

“나는 13살 때 위안소에 끌려가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갇혀 일본 군인에게 온갖 고초를 당했단다. 혼자되는 것은 안 돼. 할머니들이 살아온 길, 식민지 지배하에 독립하려 했던 역사가 너에게 연결되어 있고 미래로 이어져 있단다.” 길원옥 할머니역을 맡은 단원의 대사다. 이들은 연수와 세나에게 자신이 겪어온 일들을 설명하며 “힘을 합쳐 서로 이해하고 함께 걸어가자”고 강조했다.

2·3막에서는 지난 3월 일본 다카라즈카시에서 일본 지방의회 최초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의견서’가 채택되는 과정이 펼쳐졌다. “일본의 사죄를 받고 죽고 싶다”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절한 소망이 녹아 있다.

극단 수요일의 단장 도쿠다 유키히로(65)는 “연수와 세나 두 소녀가 한국무용을 췄다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다카라즈카시에서 지방의회 최초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의견서가 채택됐다”고 말했다. 그는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일본 정부라는 장벽에 조그만 구멍을 내는 망치와 징을 손에 넣었다”며 감격했다. 이날 공연에는 다카라즈카 시의회의 기타노 사토코 의원과 오시마 도키코 부의장도 함께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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