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휴대전화 걸면 ♪ 손에 손잡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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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이 가사를 들은 직후 후렴구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를 흥얼거린다면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다. 20년 전 서울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를 부른 그룹 ‘코리아나’의 멤버들처럼 말이다.

‘코리아나’는 친남매인 이승규·이용규·이애숙, 그리고 이들 남매의 형수·올케인 홍화자씨 등 가족으로 꾸려진 그룹이다. 서울올림픽 전 유럽 등 외국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88올림픽 당시 28세로 막내였던 이애숙 씨를 제외하곤 모두 50대 중·후반에 접어들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손에 손잡고’의 인기는 현재형이다. 17일 60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울려 퍼지기도 했다. 베이징올림픽 주제가를 부를 후보로 코리아나가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다.

베이징올림픽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코리아나 멤버 가운데 이용규씨와 홍화자씨를 만나 근황을 들었다. 이씨는 그 동안 금융·건설·인테리어 분야 사업가로 자리를 잡았다. 홍화자씨는 양로원 등지에서 이웃을 위한 공연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 2004년에는 ‘코리아나 홍’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음반을 냈다.

개인 사정으로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이애숙씨는 종교와 공연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승규씨는 골프에 푹빠져 티칭 프로 자격을 땄다고 전화로 근황을 알렸다. 이렇게 멤버 4명이 걸어가는 길은 다르지만 그들의 핸드폰 통화 연결음은 아니나 다를까, 모두 ‘손에 손잡고’이다.

홍씨는 “서울올림픽 20주년 기념 공연을 올리고 싶어 여러모로 노력 중”이라며 “‘손에 손잡고’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듯, 지금과 같이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다시금 희망의 노래를 선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93년 대전 엑스포나 2002년 월드컵과 같은 국가적 행사에는 다시 모여 노래도 발표하고 민간 차원의 유치 운동에도 참가하는 등 힘을 보태왔다.

홍씨는 “서울올림픽 개막식 공연은 인생 최대의 환희를 맛보는 순간”이었다며 “전세계에서 음반이 1500만 장 넘게 팔렸고, 아직까지도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큰 히트곡으로 기록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씨도 “대기실에서 무대에 오를 순간을 기다릴 때의 흥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당시 의상은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직접 디자인을 해줬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개막식 행사가 형형색색으로 화려할 테니 검은색과 흰색으로 단순하게 디자인하겠다’라고 말했다”며 “여러모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들이 ‘코리아나’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80년대 들어서다. 이씨는 “한국을 알리려고 ‘코리아나’로 개명했다”며 “외국에서 활동하다 보니 애국심이 저절로 생겼고, 결국 90년대 초에 귀국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외국에서 활동한 건 “외국 무대에 나가서 성공하기 전에는 한국땅을 밟을 생각을 말라”고 불호령을 내렸던 어머니 고 유정환 여사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도쿄의 우에노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자식 교육은 유별났다. 이씨의 말이다. “한 번 실수할 때마다 매를 드셨어요. 탭댄스부터 한국무용은 물론이고, 기타·색소폰 등 악기들도 모두 다 가르치셨죠. 저희에게 무대는 전쟁터였어요.”

그런 실력을 바탕으로 이승규·이용규 형제는 다섯 살 무렵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그 뒤 해외로 무대를 넓혀가다 세계적 음반사였던 폴리그램에 발탁돼 유럽에서 ‘아리랑 싱어즈’로 데뷔했다. 홍씨는 “드럼에 태극기도 꽂고, 한복도 입었다”며 “유럽에 한국을 알리려는 뜻에서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은 정기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코리아나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이씨는 “우리에게 해체란 없다. 그룹이기 전에 가족이다”라며 “기회만 된다면 얼마든지 함께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라고 말했다.

홍씨는 “서울올림픽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걸 잊지 않았기에 20주년 무대를 제대로 올려 보답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친 김에 남북통일 축하무대에서 ‘손에 손잡고’를 부르고 싶다는 소원도 이뤄졌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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