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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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지 알 수 없었다.생각할수록 해괴하기만 했다.
애소 일로 시동생을 만나러 도쿄에 왔는데 난데없이 우변호사와함께 온천에 가 그곳에서 이자벨 내외를 알게 되었다.정작 표적삼아온 시동생은 이미 다른 여성과 약혼해 있었고,결과적으로 둘사이를 인정해버린 꼴이 되었다.
이혼한 남편의 동생 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도 어이없었으나 도쿄까지 와서 우변호사와 뒤틀어진 것은 더욱 기막힌 노릇이었다.일이 어째서 이렇게 꼬이는가.
이자벨 내외를 따라 한국인 무당을 일본에서 만난 것도 불가사의한 인연이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 몇가지 일들이 끈끈히 얽혀 아리영을 어딘가로 몰아가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그곳이 어디인가.막막했다.그나저나 애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기는 아니라며 잡아떼는 남자의 아이를 그래도 낳으라고 해야할지,중절수술을 받게 하고 새출발하도록 도와줄 것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무당이 써준 글귀가 떠올랐다.
-잉태(孕胎)여식(女息)이별(離別)인욕(忍辱)합환(合歡).
이것은 어쩌면 애소에 대한 예언인지도 모른다.가진 아이는 딸이요,그 아이 아버지와는 이별할 수요,참고 견디면 합치는 날이온다든가 하는 「점괘」같기도 하다고 짐작하면서 혼자 웃었다.점을 믿으려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러나 그녀의 투시력(透視力)에 생각이 미치면서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갑 안의 자수정 반지 생김새와 그 수정의 산지(産地)까지 정확히 알아맞히지 않았던가.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또한번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그 힘이 어떻게 주어진것인지,아니면 어떻게 차지한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은 마냥 흩날렸다.
아까 본 춘화(春畵)가 어른거렸다.
괴기하기 이를 데 없는 그림들이다.일본 옷을 입은 남녀가 저마다 하체를 드러낸채 얽혀 있다.그림의 중심부에 극대화한 성기를 안배해놓은 구도다.생체도감 쯤이나 되듯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어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혜성처럼 별안간 나타나 단 9개월 동안에 1백42점이나 되는걸작 그림을 그려낸 후 갑작스레 사라졌다는 천재화가 동주재 사락(東洲齋寫樂)만이 이같은 춘화를 그리지 않았다고 이자벨은 말했지만 그와 동시대의 우리나라 거장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는 더러 춘화도 그렸다.그러나 매우 연연(娟娟)한 풍속적인 그림이다.벗어제친 옷이나 자연 정경이 더욱 에로티시즘을 느끼게한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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