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남한과 아예 등지고 살겠단 얘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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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났다. 비무장한 민간인 관광객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북한 당국은 묵묵부답이다. 사건 다음날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명의로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담화문 한 장 달랑 발표한 게 전부다. 현장조사를 통한 정확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라는 남측의 요구를 북한이 거부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더구나 현대아산을 통해 밝힌 사건 경위에 대한 의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북한 측은 초병이 공포탄 1발을 포함해 총 4발을 발사했으며 그 시각이 오전 4시55분쯤이라고 밝혔으나 이와 엇갈린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 부근에 있었던 관광객 3명이 약 10초 간격으로 2발의 총성을 들었고, 총성이 울린 것은 5시15분 이후라고 일치된 진술을 했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한 대학생은 촬영 시각이 5시16분으로 돼 있는 사진을 찍은 직후 총성을 들었다며 사진을 증거물로 제시하기도 했다. 사진을 보면 이미 훤히 날이 밝은 뒤다. 북한군 초병이 남측 관광객인 줄 뻔히 알고도 무슨 이유에선지 등 뒤에서 조준 사살했다는 뜻이니 과잉대응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돼 있다.

북한 측은 4발 쏘았다고 하는데 왜 관광객들은 2발의 총성밖에 못 들은 것인지, 사건 발생 시각에 왜 차이가 나는지 의문이다. 북한 측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니 합동조사를 통해 정확히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이번 사건에 남측 국민 모두가 공분하고 있음을 북한은 똑바로 알아야 한다.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인 만큼 어떤 정부라도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남한과 아예 등지고 살기로 작정한 게 아니라면 하루속히 책임 있는 당국자 간 현장 합동조사 요구에 응해야 한다.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악화될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측에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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