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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북한>8.식량난의 허실 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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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여름 수해피해를 사실상 「10배」과장해 국제사회에 구호를 요청했던 북한은 지난 1월 각 해외공관에 더 이상 구호요청을 하지 말도록 지령했다고 한 재미동포가 밝혔다.
북한의 구호요청 중단은 더 이상 실효를 기대할 수 없게 된 상황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북한은 전술적 계산에 의해 수해를 활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하는 요소가 다분히 있다.수재구호미의 군량미 전용 등 이를 반증하는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본등지에서 보낸 구호미는 우선적으로 군대에 배급됐다.나머지 일부는 일반 주민용으로 돌려 가구당 7㎏씩 돌렸다.구호미를 담은 부대에는 중국적십자 마크가 찍혀 있었다.』 지난해 10월부터 한달 반을 북한에서 보낸 한 목사의 증언이다.북한은 외부에 피해액을 과장,발표하면서도 자체로는 식량난에 대한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91년에도 북한은 대규모 수해를 입었다.그 당시 북한당국은국가계획상의 물자인 전기동과 아연괴를 풀어 중국에서만 수만의 식량을 긴급 수입해갔다.그러나 이번에는 베이징(北京)대사관 내부에서 식량문제는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전혀 걱정하는 기색이아니었다.』 중국양식수출입회사와의 연고로 북한의 곡물거래내용에밝은 한 재중(在中)동포의 말이다.
그는 북한이 지난해 태국에서 쌀 15만의 선적을 중단한 것을왜 꼭 경화부족 때문으로만 보려하는지 의문을 표시했다.
그보다 싼값의 구매선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실례로 북한의 양식수출입회사 직원들이 오래전부터3천만의 잉여미가 쌓여 있는 인도에 상주해왔으며,이미 인도산 쌀이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제구호기구들이 북한에서 한창 활동하고 있던 지난해 가을 북한의 한 양식회사는 베트남에서 쌀 2만을 선적,파키스탄 등지에서 「되거래」장사를 하고 있을만큼 여유를 보였다고 그는 밝혔다.북한이 수천의 종자를 해외에서 은밀하게 구입해가 기도 했지만이는 구호와는 별개인 수해지역 파종용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극심한」식량난이 외부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북한의 식량대책은 거의 베일에 가려 있다.그 중에서도 놀라운 것은 북한의 해외농장 운영이다.
『북한은 탄자니아에 대규모 면화농장을 운영해오고 있다.북한의면화수요는 상당부분 이 농장에서 조달된다.해외농장 수확분중 3할은 원주민에게 노력 대가 등으로 주고,7할은 실어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내몽고에는 콩농장이 있다.중국이 50년대 말 군대를 동원해 대대적으로 개간사업을 벌였고 북한은 중국과 교섭해 여기에 대규모 농장을 마련했다.북한 자체의 콩 소출로는 국가의 화학공업용수요와 두부.된장 등 막대한 부식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지난해북한은 신규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일대에 밀농장 개발에 착수했다.중국 중앙정부의 협력 아래 올해부터는 대량의 밀이 같은 조건으로 북한에 반입될 전망이다.중국측은 경작지와 노동력을대고 북한은 관리기술자를 파견하 고 운영을 책임진다.밀재배는 김정일(金正日)의 특별지시에 따른 것으로 주.부식의 다양화와 관련이 있다.국수.빵.과자류를 만들어 쌀과 옥수수 위주의 단조로운 식생활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재중동포).
북한의 식량확보 대책들과 관련,주목되는 변화는 농민시장의 확대와 가내부업의 다양화다.「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속담처럼 주민들의 원초적인 생활력이 경제회생의 동력으로 유도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 이 고장은 달러가 일원이 있으면 부귀향락을 누릴 수 있게 됐다.없는게 없다.』 지난해 9월 청진의 한주민이 중국 친지에게 보낸 편지의 첫 구절이다.편지를 받은 중국친지는 3년전 방북했을 때 청진백화점 구경을 허락받지 못했다고 한다.물건이 너무 없어 창피하다며 안내원이 한사코 막아섰기때문이었다.이같은 사정 이 불과 2~3년 사이에 「1달러만 있으면 부귀향락을 누릴」낙원으로 묘사되는 것이다.편지는 이렇게 계속된다.
『일체의 공업품.식료품이 다 중국 것이니 없는 것이 없어 돈만 있으면 만족하게 살아갈 수 있다.문제는 돈을 벌어야겠는데 직장다니는 사람은 다른 벌이를 할 수 없지.집에서 노는 노인이나 부녀자들이 좀 벌이를 할 수 있다고 보니 애탄 일이지.문제는 집에서 가내부업을 하여 돈을 좀 벌거나 먹는 것을 좀 버는것이 우리 환경에서 타당한 방도라고 생각한즉,제일 좋기는 집에서 가공할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하구나.예를 들면 발포기(강냉이알파기).삥치린(氷其淋)같은 먹는 것을 만드는 기계가 가장 돈을 벌거나 먹는 것을 버는데 유리하다.자그마한 가정용 식료가공기계 하나 갖다주어 나의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기 바란다.』 강냉이 알파기는 옥수수 가루로 과자같은 것을 만드는 기계고,삥치린은 「얼음과자」의 중국말이다.
가내부업이 소규모지만 갖가지로 등장하고 돈벌이에 대한 관심이2~3년 사이에 부쩍 늘고 있는 것이다.이는 북한 당국이 정책적으로 개인의 영리활동을 묵인 내지 방조함으로써 가능해진 일이기도 하다.
이같은 영리활동이 확산되면서 「농민시장」의 규모와 활기가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특히 지난해 8월의 수재이후 쌀거래를 중심으로 시장이 크게 늘었다』(재일동포).
지난해 함경도를 방문했던 재중동포는 농가에서 소를 키우는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북한에서 개인적 사육은 돼지까지가 상한이다.그나마 키워서 국가에 바치고 겨우 북한돈 30~50원만 받는다.닭도 마릿수까지 제한한다.그 소가 개인소유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북한으로서는 어쨌든 「혁명적」변화인 것이다.』 『금지품목인 쌀이 거래된지도 이미 2년이 지났고,뙈기밭과 텃밭이 확산돼도 단속하지 않고 느슨하게 대처한다』(재독동포). 『함흥시 입구에 강변도로를 따라 개설된 농민시장은 약 1백에 달해 놀라웠다.사람들도 많았다.주민들은 생활의 필수도구로배낭을 메고 다닌다.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교환하기 위해서다.이제 농민시장은 주민생활의 중심으로서 없어서는 안될 확고한 위치에 있다』(재중동포).
지난 1월 북한을 다녀온 한 재중동포는 『수재 이후 평양도 전지역에 난방이 들어오지 않고 간장 등 부식배급이 달리는 어려운 사정이지만 그래도 거의 1백% 배급제가 유지된다.
그러나 함흥.흥남 등 중급도시는 약 70%,기타 농촌에서는 50% 정도만 배급제가 유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농민시장이그 나머지를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북동포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북한의 식량사정은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오히려 주민들은 김정일이 국가주석에 취임하면 보다 과감한 개혁정책이 나와 생활형편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전택원 부장 ▶일본=방인철 부장 ▶美서부=안희창 기자▶독일=유영구 전문기자 ▶美동부=김용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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