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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에서…장외에서…정수근, 두 번의 병살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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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한자어로 된 그 이름은 문득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때론 섬뜩하다. 병(倂) 살(殺) 타(打). 아울러 함께 죽게 때린다는 말 아닌가. 그라운드 안에서야 무슨 섬뜩한 생각이 들까만, 운동장 밖이라고 생각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그 이름은 재미로 웃어넘기기엔 찜찜할 때가 있다.

그날 팀은 3-0으로 뒤지고 있었고, 무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다. 6회 말이었고 분위기는 롯데 쪽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 전날까지 3연패로 바닥을 기던 팀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 찬스에서 뭔가 나와야 했다. 16일 사직구장. KIA와 롯데의 경기였다. 이럴 때 타석에 들어서는 건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가 되는 것과 다름없다. 뭔가 꼭 해줘야 하는 상황. 대신 잘못하면 그 비난이 내게로 온통 쏟아지는 그런 상황.

정수근이 타석에 섰다. 그는 캡틴, 주장이었다. 7, 8, 9 하위 타선에서 만루 찬스를 만들어 줬기에 분명 뭔가를 풀고 연결해 줘야 하는 1번 타자이기도 했다. 윤석민(KIA)의 초구는 볼이었고, 두 번째는 스트라이크, 세 번째는 다시 볼이었다. 볼카운트 1-2. 만루를 감안하면 더 이상 볼로 유인할 수 없는 장면이 됐다. 방망이가 나가야 할 타이밍이기도 했다. 윤석민도 그걸 알았고 정수근도 그걸 알았다. 4구째. 정수근의 방망이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났다. 잘 맞은 타구였다.

“와~”. 그러나 벌떡 일어난 사직구장의 3만 관중에게 돌아온 건 탄식이었다. 잘 맞은 타구는 KIA 2루수 김종국의 정면으로 날아갔고, 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가 됐다. 1점을 얻었지만 타점으로도 기록되지 않는(새로운 지식? 병살타는 타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최악의 결과였다. 가장 허탈해한 건 정수근 본인이었다. 롯데는 추격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렸고 뒤에 1점을 더 따라갔지만 결국 3-2로 졌다. 정수근의 병살타가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날 때린 병살타는 정수근으로서는 치욕이었을 것이다. 그런 중요한 상황에서 제 몫을 하지 못한 게 가슴속에 멍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지독한 멍은 그날 경기가 끝난 뒤 정수근이 때린 또 한번의 병살타로 만들어졌다. 정수근은 그날 경기가 끝난 뒤 병살타의 아픔을 잊고자 술을 마셨고, 술이 취한 상태에서 경비원과 경찰관을 향해 주먹으로 병살타를 때렸다. 그에겐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롯데 구단은 곧바로 그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 요청했다. 그 말은 올 시즌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야구를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거다. 정수근을 보는 시선에도 동정의 애처로움은 없다. 그가 때린 병살타는 경기장 안에서처럼 잘 맞았지만 불운해서가 아니고 의도적으로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 휘두른 주먹이어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는 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

책임에 대해서 생각한다. 팀(구단)들이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닌 야구를 해야 하는 것과, 선수들이 야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건 프로야구를 선망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내부자들의 책임이다. 내 집 앞의 쓰레기를 내가 치워야 하는 일종의 시민의식 같은, 그런 거다. 정수근의 두 번째 병살타는 그런 ‘의식 불감증’이 빚어낸 결과다. 진지한 직업의식이 없는 야구기계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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