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6> 백상어와 탱크의 질주…137번째 브리티시 오픈의 주인공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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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24면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1998년 영국 리버풀 인근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장에서 열린 브리티시 오픈. 최경주(38)가 PGA투어의 메이저 대회에 첫걸음을 내디딘 무대다.
최경주는 당시 골프의 본고장에서 열린 브리티시 오픈에 출전하기 위해 예선전까지 치러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본선에 나갔지만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디 오픈(The open)’의 벽은 역시 높았다. 첫날 이븐파 70타를 쳤지만 둘째 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 10오버파 80타를 기록하고 컷 탈락했다.

최경주는 “그때는 어떻게 18홀을 마쳤는지 모르겠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생소한 코스에서 얼떨떨한 기분으로 공을 쳤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올해 브리티시 오픈이 열리고 있는 장소가 바로 그 로열 버크데일이다.

브리티시 오픈은 골프의 발상지인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를 비롯해 9개 코스에서 돌아가며 열린다. 유서 깊은 링크스 코스,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경기를 치르다 보니 해마다 많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에피소드가 쏟아진다.

2000년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제129회 대회를 잊을 수 있을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24세의 나이로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포효했던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즈가 마지막 날마다 입고 나오는 빨간색 티셔츠가 다른 선수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각인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마크 캘커베키아(미국)는 “전성기의 잭 니클로스가 돌아와도 우즈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스코틀랜드 카누스티 골프장에서 열렸던 1999년 대회도 빼놓을 수 없다. 71번째 홀까지 3타 차의 단독 선두를 달렸던 프랑스의 장 방 드벨드는 4라운드 18번 홀에서 공을 워터해저드에 빠뜨려 트리플 보기(7타)를 기록한 끝에 우승 트로피를 폴 로리(영국)에게 내줬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드벨드가 트리플 보기만 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에서 골프의 인기는 훨씬 올라갔을 것이다.

95년 대회(올드 코스)에선 ‘필드의 풍운아’ 존 댈리(미국)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댈리는 대회 직전까지 알코올 중독과 아버지 폭행 사고까지 겹쳐 ‘패륜아’로 불렸다. 그의 출전 자체가 신사의 스포츠인 골프에 대한 모욕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 대회에서 댈리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해 그를 둘러싼 비난을 잠시나마 달랬다.

댈리는 로열 버크데일에서 열린 98년 대회 2라운드 18번홀에선 벙커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무려 10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137회를 맞는 2008년 브리티시 오픈의 챔피언은 누굴까. 비바람 속에 열린 1~2라운드는 볼 만했다. ‘백상어’ 그레그 노먼(52ㆍ호주)이 노익장을 뽐냈고, ‘탱크’ 최경주는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향해 질주했다. 노먼은 2라운드까지 이븐을 치며 2위 자리에서 버텼다. 한 때는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최경주는 2라운드에서만 67타를 치며 합계 1언더로 선두 자리를 빼앗았다.

그러나 누구도 은빛 찬란한 ‘클래릿 저그(Claret Jug)’의 주인을 예상하기 어렵다. ‘디 오픈’은 우승자를 쉽게 보여 주지 않는다. 로열 버크데일의 폭풍을 마지막까지 견뎌내는 선수가 축배를 들 것이다. 오늘 밤 챔피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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