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기쁨 <71> 시칠리아서 만난 멋진 레스토랑<2>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1호 32면

5월 연휴 시칠리아로 떠났던 우리 부부는 공항에서 가방을 찾지 못해 곤란했지만 개의치 않고 먹고 마시는 것에 전념하기로 했다. 팔레르모, 아그리젠토를 거쳐 도착한 곳은 시칠리아 최고의 관광지 타오르미나.

‘빛’이라는 의미를 가진 ‘루체(Luce)’ 와인의 고유 로고.

여전히 가방을 찾지 못한 탓에 이 무렵 면도를 못한 내 얼굴에는 수염이 지저분했고 옷은 여전히 청바지에 스니커즈·피케셔츠 차림이었다. 다행히 면 재킷을 입고 있었지만 레스토랑에 들어설 때마다 “여행가방을 찾지 못해서…”라는 말로 첫인사를 해야 했다. 이탈리아에는 엄격한 레스토랑 매너가 있다. 가장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타볼라 칼다’ ‘오스테리아’ 같은 캐주얼 음식점은 복장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다. 주문하는 요리에도 규칙이 없어 그저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면 된다. ‘트라토리아’ ‘리스토란테’는 잘 차려입고 가는 곳이다.

남성은 재킷을 걸쳐야 하고 수트를 입는다면 더 완벽하다. 우아한 셔츠라면 타이는 매지 않아도 무방하다. 여성도 우아한 옷차림이 바람직하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는 안티파스토(전채)→프리모 피아토(파스타·리조토)→세콘도 피아토(주 요리)→돌체(디저트)→카페(커피) 순서로 음식이 나온다. 안티파스토에서 주 요리까지 최소한 두 가지 음식을 주문해야 하고, 첫 요리가 나오면 돌체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또한 ‘리스토란테’와 ‘트라토리아’에서는 피자를 먹을 수 없다. 피자가 먹고 싶다면 ‘피체리아’로 가야 한다.

라 지아라
오후에 영화 ‘그랑 블루’로 유명해진 카포 타오르미나와 그리스 극장 등을 둘러본 뒤 ‘라 지아라’로 갔다.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개장 시간인 7시에 맞춰 가는 것이 좋겠다는 호텔 직원의 귀띔이 있었다. 아내와 나란히 피케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신혼부부로 생각한 걸까? 친절하게도 가장 안쪽의 테라스 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라 지아라’는 신선한 어패류를 참신한 아이디어로 선보이는 레스토랑이다. 특히 얼린 흰 살 생선을 레몬 그라니타에 끼워 내놓는 방법이 무척 새롭고 독특하다.

시칠리아에 오면 꼭 마셔야 하는 와인들이 있다. 화이트와인이면 인촐리아 품종과 그레카니코 품종이 유명하다. 가볍고 상쾌한 맛에 흰 꽃과 시칠리아 특산 아몬드의 뉘앙스, 뒷맛으로 아주 약간 쓴맛이 남는 게 특징. 이 집의 와인 리스트는 역시 훌륭했다. 이탈리아의 모든 와인이 망라돼 있었고, 이제는 환상의 와인으로 불리는 ‘루체 1994년산’도 있었다. 퍼스트 빈티지는 1993년인데 2년째에 최고 걸작을 만들어냈고, 이것을 피렌체의 에노테카 핀키오리(이탈리아의 유명한 고급 음식점)가 매점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여행지에 가면 그 지방의 음식과 와인을 마시자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지만 이번만큼은 ‘루체 1994년산’을 주문했다. 타오르미나의 야경이 토스카나 최고의 와인을 선택하게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