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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누가 이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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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2008.07.16 01:44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 금요일 저녁 여섯 시에 돌아오겠다고 하셨잖아요. 왜 안 오시는 거에요. … ‘고(故) 박왕자’라니요. 왜 어머니 성함 앞에 글자가 있는 거에요 왜. 왜. … 이 못난 아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도 원통합니다. 그저 영정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을 눈물로 삼켜낼 뿐. … 전 어머니께 잘 다녀오시라고 했지, 잘 가시라고는 안 했잖아요. 어디로, 왜 가시는 거에요. … 저 직장 잡고 버젓이 자리잡는 모습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 이 글조차도 끝내고 싶지가 않네요. 가시는 어머니 치맛자락이라도 내어주세요. 그럼 들고 울부짖을 수라도 있을 거 아녜요.”

# 지난 11일 금강산 관광을 나섰다 북한군 초병의 총격을 받고 숨진 고 박왕자씨의 아들 방재정씨가 자신의 미니홈피(http://www.cyworld.com/matean)에 올린 글의 일부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읽는 내내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 글을 보는 내가 그럴진대 정작 그 글을 쓴 아들 방씨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글 쓴 날짜로 보건대 지난 15일 영결식을 마치고 어머니를 땅에 묻고 나서 도저히 가눌 수 없는 마음을 부여잡고 다음 날 새벽이 되도록 쓴 글이었으리라. 그 글을 쓰면서 울고 또 울었으리라. 한 글자씩 자판을 칠 때마다 하염없는 눈물을 떨구었으리라. 마침표조차 찍을 수 없는 그 글을 쓰고 난 후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길 없어 밤을 지새웠으리라. 도대체 누가 그의 눈물을 닦아주려는가.

# 얼마 전 영국 정부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사망할 경우 그녀의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를 것을 공식 결의했다. 윈스턴 처칠 이후 21세기에 국장을 치르는 첫 번째 전직 총리가 된 셈이다. 물론 마거릿 대처는 아직 건재하다. 하지만 영국은 더할 수 없는 국가적 존경심을 표시해 그녀를 기억하겠다고 미리 선포한 셈이다. 그것은 그녀가 단지 영국병을 치유한 ‘철의 여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눈물을 닦아준 ‘어머니요 아내 같은 총리’였기 때문이었다.

# 마거릿 대처는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전사한 250여 명 군인들의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썼다. 상투적인 내용의 편지가 아니라 전사자 개개인의 기록을 읽으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으로, 또 남편을 잃은 아내의 심정으로 편지를 썼다. 그것이야말로 마거릿 대처의 위대함의 원천이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야말로 리더십의 출발이요, 완성이기 때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도 의당 그래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어땠는가. 늑장 보고와 보고상의 혼선이 있었다 하더라도 멀쩡한 국민이 까닭 없이 총격을 받고 죽었는데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최우선으로 다뤄야 할 대통령이 국회에서의 시정연설에 앞서 한마디 언급도 없이 대북 유화 제스처를 담은 연설을 그대로 쏟아낸 것은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스스로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대통령의 제1 책무를 포기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 이 점을 통렬히 자성하고 뒤늦었지만 아들 방씨에게 마음을 담아 진실된 편지를 써야 할 것이다.

# 북한군의 총격 사실이 확인되고 엄연히 목격자마저 존재하는 이 비극적 사건은 결국 무기력한 정부 탓에 또 하나의 의문사가 되고 말 형편에 처해 있다. 철저한 진상조사마저 물 건너가고 이제는 유야무야 시간이 지나 덮이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아 더 분통이 터진다. 이미 피살된 고인은 땅에 묻혔지만 살아남은 자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누가 그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려나.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없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