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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현 상황에 불만 표시 박왕자씨 희생양 삼은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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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박왕자씨도 북이 희생양으로 삼은 게 아니냐.”

금강산 관광 도중 북측에 억류됐던 민영미(44·여)씨가 처음 입을 열었다. 민씨는 1999년 6월 금강산에서 “귀순자들이 잘살고 있다”는 말을 북측 환경감시원에게 했다는 이유로 북에 6일간 억류됐었다.

박왕자씨 피격사건 이후 민씨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에서 억류됐던 기억을 9년간 잊으려고 노력했는데 다시 떠올리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민씨는 “내 말이 (박왕자씨의) 유족들한테 혹시 누가 될까 두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본지는 17일 경기도 성남시의 자택에서 민씨를 만나 두 시간에 걸쳐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연평해전으로) 나도 희생양이 된 거고, 박씨도 북이 지금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다행히 살아 돌아왔지만 박씨는 그러지 못해서 유족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은 민씨와의 일문일답.

-억류 경험으로 봤을 때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나.

“억류됐을 당시 북측 관계자가 나한테 ‘연평해전 기억하느냐. 남한에서 기사가 어찌 나왔느냐’고 물었다. 내가 ‘북이 도발한 게 아니냐’고 말하자 화를 내더라. 그 관계자는 ‘보상해 달라고 했는데 안 됐다. 많은 희생이 있었는데 억울하다. 누군가 희생해야 했었다’고 말하더라.” (※연평해전은 민씨가 억류되기 5일 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남북 해군 간에 발생한 교전으로 북한군 20여 명이 죽었다.)

-이번 일이 예견된 사고라는 말도 있다.

“금강산 관광의 의미도 많지만 안전보장이 제대로 안 돼 있는 게 문제다. 북은 우리와 체제가 다른 곳이다. 말 한마디로 생사가 오가는 만큼 안전에 신경 써야 할 것 아니냐. 자기 돈 내고 여행 간 관광객이 북측에 의해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당시 북측은 ‘민씨가 귀순을 유도해서 억류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북측 환경감시원에게 귀순을 종용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금강산 올라가면서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와 답했을 뿐이다. ‘남한에 귀순한 사람들이 잘사느냐’고 물어 ‘잘산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가면 대우해 주느냐’는 말에 ‘통일돼서 자연스럽게 왕래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을 뿐이다.”

-북이 먼저 유도했다는 건가.

“유도한 거다. 그런데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북측이 주장했다. 박씨 일도 마치 박씨가 잘못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일까 싶다.”

-풀려난 이후 어떻게 지냈나.

“남한에 돌아와 1년간 치료를 받았다. ‘말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거다’는 손가락질이 너무 힘들었다. 또 한동안 ‘햇볕정책에 고춧가루 뿌렸다. 죽이겠다’는 협박전화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민씨는 ‘날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면 어쩌냐. 남편과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 두렵다’며 사진촬영도 거부했다.)

한은화·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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